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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대구관구 청소년, 청년국 연수 미사 강론)
   2019/12/05  10:18

대구관구 청소년, 청년국 연수 미사

 

2019년 12월 4일 11시 꾸르실료 교육관 경당

 

찬미예수님, 대림 제1주간 수요일이에요. 오늘 본기도 에서 우리는 ‘성자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자격을 갖추고, 성자께서 베푸시는 천상 잔치에’들게 해주시기를 청했죠. 1독서에 그 잔치가 묘사되어 있는데요. 만군의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에게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베푸시며, 죽음을 영원히 없애시고,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며, 당신 백성의 수치를 치워주실 것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오늘날의 청년과 초중고 유치원 학생들의 현실은 그 반대로, 잔치는커녕, 죽음의 위험이 도처에,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눈물과 수치로 차별과 냉소를 견뎌야 하는 현실이에요. 사실 우리나라도 성장과 발전이 용이했던 팽창 사회에서 정반대로 고령과 인구절벽으로 수축사회로 바뀌어, 1) 자기 이익만 찾는 이기주의, 2) 투쟁주의, 3) 미래보다는 당장 눈앞의 이익주의, 4) 그래도 팽창하는 곳에 모이는 인구집중화, 5) 수축에 적응하지 못하여 나타나는 심리적 병리현상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수축사회], 홍성국 참조).

 

눈보라 산속에서 세 사람이 길을 잃었고 그 중 한 사람은 다리도 다쳤다고 해요. 셋이서 힘을 합해야 하겠지만, 이기주의에 빠져, 눈앞의 이익에 빠져 투쟁주의에 빠져 한 사람이 박차고 나가죠. 다리를 다친 사람을 살리려다가는 자신까지 죽을듯한 공포 때문이겠죠. 그래서 남은 사람이 다리 다친 사람을 업고 산을 내려갑니다. 종일 걸려 산을 겨우 내려왔는데 길옆에 쓰러져 눈에 파묻힌 먼저 간 사람을 발견하죠. 살아보겠다고 먼저 갔지만 하늘나라로 먼저 갔죠. 저 체온증 때문에. 엎고 내려온 사람은 업힌 사람의 체온과 걷는 운동의 열로 둘 모두 구출했구요.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은 공포가 닥치면 먼저 내려간 한 사람처럼 행동할지도 몰라서 그를 비난할 수도 없겠지요. 반대로 생명을 살리려는 노력이 결국 자신까지 살린다는 것을 보고 우리는 꼭 깨달아야 할 것이에요. 수축사회에 적응하는 방법으로 그 책에서는 1) 이타적이고 투명성으로 이기주의를 벗어나야 하고, 2) 눈 앞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미래를 보라고, 3) 투쟁보다는 창의력을 키우고 다른 창의력과 연결하고, 4) 지방에서도 발전할 것을 찾아야 한다고 해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갈릴레아 호숫가 산에서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 불구자들, 말 못하는 이들을 사람들이 데리고 오자 그들을 고쳐 주시죠. 이어서 제자들을 불러, ‘가여운 군중이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고 하세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빵이 몇 개 있느냐고 물으시고, 제자들에게 빵 일곱 개와 물고기 조금을 받아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고 일곱 광주리에 남기셨죠.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은 빵이 많아지게 하신 기적과 함께 굶주림의 공포에 사로잡혀 자기 빵을 욺켜 잡고 내놓지 않으려던 이들의 딱딱한 마음을 치유하시고 나누게 하신 것도 기적이죠.

 

수축사회라는 한국의 사회적 변화를 겪어야할 청년 초중고 유치원생들에게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1) 생명을 살리는 신앙인,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형제애. 2) 우리가 꼭 얻어야 할 미래의 재산은 하늘나라의 보화, 3) 뱀처럼 지혜롭고, 재빠른 청지기처럼, 자신의 현실 상태에서 가능한 창의력을 키우며, 4) 지구라는 인류 공동의 집을 잘 가꾸도록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최근 [교황 프란치스코 맨 오브 히즈 워드]영화를 보셨으면 아실 것인데, 말하는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웃는 연습도 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모신 기쁨이 바로 그리스도 신자 영성의 핵심이죠. 필리피 4,4-5절 말씀을 듣습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아주) 가까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우리 모두 기쁨을 간직하고 주님을 기다립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