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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윤일 요한의 제 2의 고향 (여우목 교우촌 및 이윤일 요한 성인상 축복미사 강론)
   2017/09/21  15:32

여우목 교우촌 및 이윤일 요한 성인상 축복미사

 

2017. 09. 20. 여우목 성지

 

오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에 ‘여우목 교우촌 및 이윤일 요한 성인상 축복식’을 갖게 되어 매우 뜻이 깊다고 하겠습니다. 
대구대교구 제2주보 성인이신 이윤일 요한께서 오랫동안 사셨던 여우목 교우촌과 성지를 개발해야 하겠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가, 작년에 교구 평신도위원회와 평협 상임위원들과 함께 마원성지와 여우목성지를 순례하고 난 뒤 안동교구의 권혁주 주교님과 상의를 하였고, 실무적으로 문경본당과 대구 관덕정순교기념관에서 일을 추진하여 오늘 이 자리가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쾌청한 가을 날씨에 여우목 교우촌에서 안동교구와 대구교구의 아름다운 만남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권주교님과 문경본당과 관덕정운영위원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우목 교우촌은 오래 전에 형성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회장님의 4대조인 서광수 할아버지께서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에 연루되어 강원도로 피신했다가 다시 경상도 상주에 와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인 서치보 요셉과 그 가족들이 기해박해 이후에 이곳 문경 여우목에 와서 사셨습니다. 서치보 요셉의 아들들이 서상돈 회장님의 아버지와 삼촌들입니다. 삼촌 세 분(서인순, 서익순, 서태순)이 병인박해 때 순교하셨습니다. 상주에서 순교하시고 한티에 묻혀계시는 서태순 베드로 순교자는 조선시대 순교자 133위 시복대상자로 하느님의 종에 선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윤일 요한 성인께서는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났지만 박해를 피해 부모님을 따라 상주 갈골에 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부친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자 성인의 처가 친척들이 살던 이곳 여우목(호항리)에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처가식구들이 누구냐 하면, 1827년 정해박해 대구에서 순교하신 복자 박경화 바오로와 그의 아들 복자 박사의 안드레아의 후손들인데 이 사람들이 여우목에 먼저 와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박경화 바오로는 1827년 경상감영 옥에서 옥사하였고, 박사의 안드레아는 12년간 감옥살이 하다가 1839년 기해박해 때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되었음. 이들도 충청도 홍주 출신임)
이윤일 요한 성인께서는 이 여우목에서 공소회장으로서 열심히 전교를 하고 신자들을 가르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1866년 병인년 11월 18일에 갑자기 들이닥친 포졸들에게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체포되어 문경 관아에 끌려갔다가 다시 상주 진영으로 가서 심문과 고초를 당하였고 또 다시 대구의 경상감영으로 압송되어 감사에게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결국 1867년 1월 21일 관덕정 언덕에서 문경 한실공소의 김예기 회장과 김인기 형제와 함께 참수치명하신 것입니다.
당시 성인의 나이가 52세였는데 올해가 순교 1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성인의 유해는 처음에는 관덕정 형장 근처에 임시로 묻혔다고 합니다. 그 후 후손들이 대구 비산동 날뫼로 이장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후손들이 경기도 용인 묵리로 이사를 가면서 1912년에 그리로 다시 모셔갔습니다. 성인께서 60여 년 동안 묻혀 계셨던 그 묵리 뒷산을 한 8년 전에 관덕정 순례단과 함께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묘소가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성인의 유해는 1976년 6월 24일에 경기도 안성 미리내 성지의 순교자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그 후 10년 후인 1986년 12월 20일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님께서 당시 수원교구 김남수 주교님의 승인을 얻어 성인의 유해를 미리내 성지에서 대구로 모시고 오셨습니다. 대구에서 순교하신 후 120년 만에 다시 대구로 모시게 된 것입니다. 
이대주교님께서는 이윤일 요한 성인을 대구교구의 ‘제2주보성인’으로 선포하시고 성인의 유해를 성모당 제대 밑에 봉안하였습니다. 그리고 4년 후인 1991년 1월 20일 관덕정 순교기념관을 준공하면서 관덕정 성당 제대 밑에 안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윤일 요한 성인께서는 살아계실 때 그렇게 많이 이사를 다니시더니 돌아가신 후에도 이렇게 많이 이사를 다니셨는데, 오늘 성인의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여우목 교우촌을 축복하고 성인상을 건립하여 축복하게 되어서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시복시성운동을 하고 순교자 현양사업을 하는 이유는 순교자들과 성인들에게 단순히 잘 해 드리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이 우리들의 모범이 되기 때문입니다. 
‘시성’을 라틴말로 ‘Canonizatio’라고 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어 ‘canon’이라는 말에서 나온 말인데 막대기, 자, 기준, 모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순교자들이나 훌륭하게 사시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현양하고 시복시성운동을 펼치는 이유는 이분들이 우리들의 삶과 우리들의 신앙의 모범이 되기에 그분들을 본받고 닮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윤일 요한 성인을 생각하면 참으로 의연하고 당당한 참 신앙인의 모범을 보는 듯합니다. 이윤일 성인을 비롯한 우리의 순교 선조들은 온갖 박해와 시련을 무릅쓰면서 자신의 믿음을 굳게 지켰고 그 믿음을 이웃에게 기쁘게 전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혼란스럽고 믿음이 부족한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에 대하여 우리 순교자들과 성인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성 이윤일 요한과 동료 순교 성인들이여, 저희와 저희 교회와 우리나라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