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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밀알과 같은 삶을 사십시오. (한국가톨릭의사협회 피정 파견미사 강론)
   2018/03/20  12:59

한국가톨릭의사협회 피정 파견미사

 

2018. 03. 18. 한티성지 영성관

 

이제 봄이 온 것 같습니다. 어제 교구청 구내를 걷다가 정원에 산수유가 활짝 핀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목련꽃도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일제강점기시대 때 대구의 대표 시인인 이상화 시인께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하고 읊었습니다. 지금은 ‘빼앗긴 들’은 아니지만, 나라 안팎으로, 또 교회 안팎으로 어려운 시대라 할 수 있는 이 시기에도 봄은 오는가 봅니다.

이곳 한티에는 아직 나뭇가지가 앙상합니다만, 나뭇가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싹들이 속에서 올라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티성지는 팔공산의 7부 능선 높이에 있기에 꽃이 피는 시기가 대구 시내보다 적어도 2주 이상 늦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 산벗꽃이 피기 시작하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자연이 아름다운 것처럼 이곳 한티 성지의 역사가 그리 아름다웠던 것은 아닙니다. 150년 전 이곳은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현장이었습니다. 이곳은 우리 순교자들이 살았던 곳이고 죽었던 곳이며 또한 묻히신 곳입니다. 성지가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만 채워도 되는데 이곳 한티는 세 가지 조건을 다 가지고 있는 완벽한 성지입니다.

한티성지는 우리 교구의 모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37기의 순교자 무덤이 있습니다. 아직 이 분들이 복자도 성인도 되지 못했지만 이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있고 지금의 우리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부 떼르뗄리아누스는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12,24-25)

이것은 하느님께서 세우신 자연의 법칙이고 생명의 순리입니다.

 

우리 교구에 ‘밀알후원회’가 있습니다. 우리 교구 후원회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회복지후원회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형님인 김동한 신부님께서 만드신 후원회입니다. 그 신부님께서 제가 신학생 때 저희 본당신부님이셨는데 그때 대구 송현동에 ‘대구결핵요양원’을 만드셨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결핵요양원 후원회를 만드신 것이 오늘날 ‘밀알후원회’입니다.

김동한 신부님께서는 한 30 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해마다 9월 28일 신부님의 기일이 되면 김추기경님께서 대구에 내려오셔서 기일 미사를 집전하곤 하셨습니다. 그러시던 그분도 9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두 분 다 참으로 밀알과 같은 삶을 사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안양의 성 나자로 마을 아시죠? 메리놀회 요셉 쉬니 신부님이 세웠었는데 이분은 일생을 나환자들을 위해 바친 선교사입니다. 이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유언을 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죽거든 내 무덤 위에 나무를 심어주시오. 그 나무가 자라면 베어서 나환자들의 집을 짓는 데 써주시오. 베어낸 그 자리에 또 나무를 심어 그 나무가 자라거든 마찬가지로 그들을 위한 집을 지어주시오. 나는 죽어서 나환자들의 집을 짓는 데 사용될 나무의 비료가 되겠습니다.”

이 신부님의 삶이 또한 밀알 같은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수정(水晶) 박병래 선생님을 아십니까? 작년에 한국평협에서 펴낸 ‘20세기를 살아간 다섯 사람 이야기, 불꽃이 향기가 되어.’라는 책에도 나옵니다만, 성모병원 초대원장을 지내신 분입니다.

충청남도 논산 출신으로 파리외방전교회의 목(睦)신부님의 권고로 아버지 박준호(朴準鎬) 와 함께 신학문을 공부하기 위하여 어린 시절에 상경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양정고등보통학교에 한 학년의 차이를 두고 1, 2학년 학생으로 입학하였으나 부자가 다 같이 한 학교에 다니는 것이 탐탁하지 않아 아버지는 전수학교로 전학하였다고 합니다. 하여튼 이렇게 공부를 하여 아버지는 장면 총리에 앞서서 동성상업학교(東星商業學校) 2대 교장을 했습니다.

박병래 선생님이 성모병원장에 부임할 때 병원측에서 봉급을 월 300원으로 결정하였는데, 아버지는 젊은 사람이 돈이 많으면 안 된다고 월 200원으로 주도록 하였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신앙을 통한 봉사를 천직으로 하였습니다. 광복 후 성모병원을 떠난 뒤에도 대한결핵협회장, 대한내과학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보건후생분야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이분의 취미가 1929년부터 도자기, 특히 이조백자 수집이었는데, 말년에 그 모든 품목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였던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3월 15일)에 시내 극장에서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2016년 국립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을 기해서 소록도본당 김연준 신부님이 기획하고 제작한 영화였습니다.

마리안느 씨와 마가렛 씨는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로서 평생을 남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서원을 하고 1962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2005년 떠날 때까지 43년간을 소록도에서만 살았습니다. 이 두 분은 40여 년 동안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 등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호소하여 소록도 안에 결핵병동, 맹인병동, 목욕탕, 영아원 등을 지었고 의약품들을 조달하여 수많은 환자들이 치유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센인들이 퇴원하여 육지의 정착촌으로 이주할 때는 자립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자신들이 나이 칠십이 넘어서자 부담주기 싫다며 어느 날 편지 한 장 남기고 홀연히 떠났던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우리 교구에도 계십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그 교구 출신으로 1961년에 한국에 오신 엠마 프라이징거 씨,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1959년에 오신 양 수산나 씨, 그리고 2년 전에 하느님 나라에 가셨습니다만 독일 출신으로 1962년에 들어오셨던 옥잉애 씨입니다.

엠마씨는 평생을 한센인들을 위해 헌신하셨고, 수산나씨는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들과 사도직 협조자 양성을 위해 헌신하셨으며, 옥잉애씨는 어려운 환경의 어린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이 세 분은 각자 출신 나라도 다르고 일하신 분야도 다르지만, 공통된 점은 꽃다운 젊은 나이에 부유한 당신 나라를 떠나서 그 당시 참으로 가난했던 우리나라에 오시어 반세기가 넘도록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성심껏 봉사하고 헌신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곳에 모인 여러분들 대부분은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입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직업 중에서 참으로 중요한 일을 하는 분들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일까를 생각해봤을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치유할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는 의사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의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록도 본당 신부가 영화를 찍기 위해 오스트리아 인스부룩의 어느 요양원에서 살고 계시는 마가렛 씨를 방문하였을 때 마가렛 씨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소록도에서 참 행복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요한 12,23)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에 올라가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아시면서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사순 제5주일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이 사순절을 거룩하게 보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때보다도 기쁜 부활절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