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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롭게 시작하시는 주님의 손길 안에서 (대구가르멜여자수도원 및 성당 재건축 봉헌미사 강론)
   2018/05/24  10:15

대구 가르멜 여자수도원 및 성당 재건축 봉헌미사

 

2018. 05. 19.

 

찬미예수님! 
오늘 대구 가르멜 여자수도원 및 성당 봉헌미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이 수도원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작년 4월 18일에 이 자리에서 기공식을 가졌습니다. 55년 동안 사용하였던 수도원 건물과 성당이 사라지고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공사 관계자들과 수녀님들과 함께 첫 삽을 떴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도 연일 비가 내리다가 화창한 날씨 중에 기공식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이번에도 며칠 동안 날이 궂었는데 오늘 좋은 일기 중에 봉헌식을 갖게 되어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건축공사는 1년여 만에 완성되었습니다만, 그 과정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원장 수녀님께서 말씀하시리라 생각됩니다만 수많은 분들의 기도와 헌금과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고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누구보다도 기뻐하실 분들은 이 수도원에 사시는 수녀님들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오늘 제1독서로 구약의 느헤미야서 8장 말씀을 봉독하였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주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 술을 마시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께 거룩한 날이니 미처 마련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몫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입니다.”(9-10)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의 유배에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성을 다시 쌓고 성전을 다시 지어서 봉헌하는데 너무나 감격스러워 여기저기 울먹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느헤미야 총독과 에즈라 사제가 백성들에게 격려하는 말씀입니다.
제가 알기로 지난 수년 동안 수녀원을 다른 데로 이전할 것인가, 아니면 이 자리에 재건축할 것인가를 두고 수많은 고심과 논의를 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재건축을 결정하고 난 뒤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과 수고로움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만큼이나 기쁠 것이라 생각됩니다. 
장차 제병방으로 쓰이게 될 임시 거처에서 수녀님들이 불편함을 무릅쓰고 1년 2개월을 사셨습니다. 제가 그동안 건축이 어떻게 되어가나 하고 몇 번 현장을 들린 적이 있습니다. 그 때마다 수녀님들이 일하시다 말고 다 나와서 맞이하는데 얼굴에 기쁨이 넘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새로 수도원을 짓는 데 있어서 모두 한 마음이 되어서 기쁘게 기도하고 기쁘게 일하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던 것입니다. 
옛날 수도원과 성당 건물이 아쉽기는 하지만 너무 낡아 재건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당의 제대와 십자가, 감실, 스테인드글라스, 천개 등 몇 가지는 옛날 그대로를 살렸습니다. 
지난겨울이 유난히 추웠지요? 그런데 수녀님들은 임시 거처로 마련된 건물에서 오히려 따뜻하게 잘 지냈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옛날 수도원이 너무 추웠기 때문입니다. 대구에 가르멜 여자 수도회가 들어오게 된 것은 서정길 요한 대주교님께서 오스트리아의 ‘마리아쩰 가르멜 여자수도회’에 대구 진출을 요청함으로써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62년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축일에 이 자리에서 서정길 대주교님에 의해서 수도원과 성당이 봉헌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56년 만에 이 자리에 수도원과 성당을 다시 지어 봉헌하면서 엘리야 데레사 수녀님을 비롯하여 초창기 대구 가르멜 여자수도원의 기초를 이루었던 수녀님들을 오늘 우리는 기억하고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수도자든, 성직자든, 평신도이든 처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첫발을 내딛었을 때의 각오와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도자는 처음 성소를 받고 수도원에 들어와서 첫 서원을 하였을 때의 그 순수한 마음가짐을 늘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마태 16,13-19)을 보면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고 말씀하시면서 베드로와 사도들 위에 교회를 세우십니다. 이렇게 세워진 교회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의 그 정신, 즉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과 복음의 정신을 늘 견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수도회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수도회의 창립자 정신을 잊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는가를 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가르멜 수도원을 처음에 누가 시작하였는지는 모릅니다. ‘가르멜’이라는 말은 ‘가르멜 산’에서 나온 말인데 가르멜 산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북쪽 지중해 연안에 ‘하이파’라는 항구도시가 있는데 하이파의 동남쪽에 있는 산입니다. 
가르멜 산이라면 누가 떠오릅니까? 엘리야 예언자입니다. 저도 옛날에 한 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만 가르멜 산 중턱에 엘리야 예언자가 살았다는 동굴이 있습니다. 
하여튼 열왕기 상권 18장을 보면 가르멜 산에서 엘리야 예언자가 바알 신을 섬기는 예언자 450명과 대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대결을 시작하면서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1열왕 18,21)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분명히 하느님만은 믿고 따르겠다는 굳은 신앙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마태 16,13-19)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하고 생각하느냐?” 하고 질문하시자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오늘 수도원과 성당을 지어서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신앙을 새롭게 고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날 날로 세속화 되어가고 있는 이 세상에 우리가 더 이상 물들지 않고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엘리야 예언자의, 하느님께 대한 그 불타는 정신, 베드로의 그 굳은 신앙을 다시 고백하고 견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가르멜 산에는 은수자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이들이 함께 모여 삶으로써 수도회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처음의 정신이 흐트러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500년 전에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와 십자가의 요한 성인께서 나와서 개혁을 하여 오늘날의 가르멜 수도회가 있는 것입니다. 
 
작년에 저에게 보내온 ‘2017년 대구 가르멜 소식’지에 “깨어짐과 부서짐, 철저히 모든 것을 무너뜨리시고 새롭게 시작하시는 주님의 손길”이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수도원 재건축의 의미를 그렇게 담았다고 봅니다. 오늘 이 봉헌이 그 의미를 철저히 사는 새로운 출발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제 2독서로 봉독한 베드로 1서 2장 말씀을 마지막으로 다시 들어봅시다.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있는 돌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된 값진 돌이십니다. 여러분도 살아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4-5)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