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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래도 사랑하십시오." (관덕정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미사)
   2016/09/05  17:22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미사


2016. 09. 03. 관덕정 순교기념관

 

올해가 병인순교 1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784년에 이승훈 선생께서 북경에 가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시작된 한국천주교회는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을 거치며 무려 백여 년 동안 모진 박해와 시련을 겪어야 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1866년에 시작되어 흥선 대원군이 실각했던 1873년까지 지속되었던 병인박해는 8천명 이상의 순교자들을 낸 대박해였습니다.
관덕정 순교기념관의 현관 로비에 들어서면 왼쪽에 비석 하나가 서 있는 것이 보입니다. 무엇인지 아시지요? 대원군이 세운 척화비입니다. 비석에 무슨 글이 쓰여 있는가 하면,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옆에 작은 글씨로 ‘우리들 자손만대에 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대원군이 왜 천주교를 박해하였는가 하는 원인이 몇 가지 있다고 봅니다만, 그 중에 하나는, 그 당시 프랑스와 영국, 러시아와 미국 등의 서구 열강들이 서로 앞 다투어 들어와서는 우리나라와 수호조약을 맺자 하는 것을 대원군은 침략으로 간주하였고, 또한 천주교도 조선을 침략하는 서양세력과 같은 존재라고 간주하여 박해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1866년 2월 23일 제4대 조선교구장 장 베르뇌 주교님의 체포로 시작된 병인박해는 전국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습니다. 베르뇌 주교님은 파리외방전교회의 세 분의 신부님들과 함께 3월 7일에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이어서 3월 11일에는 베르뇌 주교님을 이어받아 교구장으로 자동 승계하신 다블뤼 주교님이 체포되셨고 주교님은 3월 30일에 위앵 신부님, 오매트르 신부님, 황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과 함께 충남 보령의 갈매못에서 순교를 하셨습니다. 
이곳 대구 관덕정도 1815년 을해박해, 1827년 정해박해와 1839년 기해박해, 그리고 1866년 병인박해 때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하신 곳입니다. 그래서 관덕정에서 순교하신 분들 중에서 2년 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 시복되신 순교복자 11분을 기리는 비석을 조금 전 미사 전에 기념관 입구에 세우고 축복을 하였습니다.
병인박해 순교자 24분이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복자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복자로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성인이 되셨던 것입니다. 
병인박해 때 8천여 분이 순교하셨다고 하고, 병인박해 순교기록인 ‘치명일기’에는 877명의 순교기록이 수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성인이 되신 분은 24분뿐입니다. 대구에서 순교하신 그 많은 분들 중에서 성인이 되신 분은 이윤일 요한 성인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순교도 어려운 일이지만 성인이 되는 일도 참으로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교구에 병인박해 100주년을 기념하여 지은 성당이 ‘복자성당’입니다. 50년 전에 우리 교구의 전 본당에서 모금을 하여 지은 성당입니다. 그리고 그 성당 마당에 세 분의 순교자들을 모셨습니다. 이분들은 경주 산내 진목정 뒷산에 묻혀 계셨는데 1930년대에 감천리 교구묘지에 이장했다가 복자성당이 완공된 후에 다시 복자성당으로 모시게 된 것입니다. 허인백 야고보, 김종륜 루카, 이양등 베드로 가 그분들입니다. 이분들도 병인박해 때 순교하신 분들로서 2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님으로부터 다른 순교자들과 함께 복자로 선포되셨습니다.  
 
일주일 전에 교구 평신도 위원회와 교구 평협 상임위원 분들과 함께 경북 문경에 있는 마원성지와 여우목성지를 다녀왔습니다. 마원성지는 복자 박상근 마티아의 묘가 있는 곳입니다. 박상근 마티아는 문경의 아전이었는데 병인박해가 일어나 칼레 강 신부님을 피신시키고 자신은 남아 있다가 체포되어 순교한 분입니다. 
그리고 여우목은 잘 아시다시피 이윤일 요한 성인께서 공소회장으로 계셨던 곳입니다. 이번에 여우목에 갔더니 마을까지는 차가 못 올라간다고 해서 가질 못했고 그 밑에 새로 꾸며놓은 곳에만 갔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회장님의 조부이신 서치보님의 묘와 큰 삼촌 서인순님의 묘가 있었습니다. 문경성당에서 한 형제님이 나오셔서 성지안내를 하고 여우목과 이윤일 성인에 대해서 설명을 하시는데, 이윤일 성인의 흔적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비석 하나라도 세우는 일을 추진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왔었습니다. 
올해가 병인순교 150주년이지만 을해순교 200주년이기도 합니다. 을해박해는 1815년에 일어났지만 1년 반 이상을 경상감영 감옥에 갇혀 있다가 1816년 음력 11월 1일(양력 12월 19일)에야 관덕정에서 치명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관덕정에서 별도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올해 우리는 자비의 특별희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순교자들은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셨던 분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도 순교자들을 본받아 하느님의 선하심과 온유하심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자비의 도구로 살아갈 것을 결심해야 하겠습니다.’(한국천주교 주교회의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 사목교서’ 중에서)
내일이면 복자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성이 됩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시성 감사미사를 이달 26일 오전 11시에 성모당에서 봉헌할 것입니다. 수녀님은 1981년 5월 4일-5일까지 우리 교구를 방문하셨습니다. 5월 4일 저녁에 봉덕동 효성여대 강당에서 있었던 수녀님의 강연회에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은 최근에 어떤 신부님이 보내주신 데레사 수녀님의 글입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입니다.그래도 사랑하십시오.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거라고  비난 받을 수 있습니다.그래도 좋은 일을 하십시오.당신이 성실하면 거짓된 친구들이나 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사랑하십시오.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십시오.당신이 여러 해 동안 만든 것이 하룻밤에 무너질지 모릅니다.그래도 만드십시오.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할지 모릅니다.그래도 도와주십시오.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면 당신은 발길로 차일 수도 있습니다.그래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십시오.

이 글의 제목이 ‘그래도 사랑하십시오.’입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선조 순교자들이 걸었던 길이고, 살았던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우리도 그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