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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발로 쓰는 한국 천주교회사 (마백락 글레멘스 회장님 장례미사 강론)
   2019/01/31  17:54

마백락 글레멘스 회장님 장례미사

 

2019. 01. 30.(수) 신동성당

 

지난 해 가을부터 마회장님께서 몸이 좋지 않으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하느님께 돌아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저께 빈소에 갔다가 두 아드님한테서 회장님께서 큰 고통 없이 떠나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위로가 되었고 회장님께 대한 미안함도 좀 덜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회장님을 갑자기 떠나보내야 했던 유가족 여러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지난 긴 세월 동안 동고동락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내조를 하셨던 신 마리스텔라 씨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감사를 드립니다. 사흘 전 마회장님이 돌아가신 날이 마침 마리스텔라 씨의 생신이었고 집에서 생신 축하의 자리에 함께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부인의 생신을 같이 지내고 그날 저녁에 하느님 나라에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회장님의 누님이신 마 아네스 님께도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감사를 드립니다. 마회장님께서 양친을 여의고 형제들 중에 누님이 가까이에서 끝까지 함께 계셔주셔서 회장님에게 큰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회장님께서는 칠곡본당에서 8년간, 신동본당에서 26년 간 전교회장 겸 사무장 일을 하셨습니다. 97년도에 신동본당에서 정년퇴임을 하시고 최근 편찮으시기 전까지 이 동네에서 사셨습니다. 
그래서 서경윤 신부님께서 이곳 신동본당 신부를 하실 때 신자들한테 ‘신동성당 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릅니까?’하고 물었더니 어떤 분이 “마회장님요!”하고 대답하길래 모두가 박수를 치며 한바탕 웃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신동본당과 마회장님을 땔래야 땔 수 없듯이 마회장님은 영남교회사 하고 땔 수 없는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회장님께서 교회 봉사자로서, 그리고 교회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신 것은 1961년에 세례를 받고 그 해 칠곡본당의 전교회장직을 맡음으로써 비롯되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2011년 12월 9일에 교회사 연구하는 분들이 ‘마백락 선생 교회사 연구 50주년 기념 논총, 발로 쓰는 한국 천주교회 역사’라는 책을 엮어 봉정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때 축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도 자료가 잘 없는 교회사 일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더구나 역사를 전공하지 않으신 분이 그 일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마회장님은 대구중학교와 대구상고를 나왔고, 칠곡본당에서 전교회장을 하면서 영남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회장님께서 교회사 연구가로서 큰 족적을 남기게 된 것은 오로지 신앙과 열정과 땀으로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기념 논총 제목처럼 ‘발로 쓰는 한국교회사’였습니다. 대구교구 뿐만 아니라 안동교구, 부산교구, 마산교구까지 경상도 지역에 마회장님의 발길이 닿지 않은 데가 없을 것입니다. 마회장님은 그 수많은 옛 공소와 교우촌을 찾아다니며 수많은 순교자 후손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정리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교구 초창기에 김구정 선생님, 최정복 선생님, 그리고 윤광선 선생님 등이 영남교회사를 정리하고자 고군분투하셨습니다. 드디어 마백락 선생님에 의해서 영남교회사가 엄청 풍부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회장님께서 1989년에 700페이지가 넘는 ‘경상도 교회와 순교자들’이라는 책을 내셨는데, 영남교회사에 대해서 궁금할 때마다 펼쳐보게 되는 책이 되었습니다. 그 책에는 이윤일 요한 성인 유해이장에 대하여 73페이지나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신나무골 성지와 이선이 엘리사벳 순교자 유해 이장에 대하여, 한티성지 무명 순교자 묘소 분묘 발굴작업에 대하여, 그리고 감천리 묘지에 계셨던 세 순교자(복자 허인백 야고보, 복자 김종륜 루카, 복자 이양등 베드로) 유해 발굴과 이장에 대하여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회장님은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하시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면서 어떻게 그렇게 전국 시골 구석구석을 잘 나니시는지 놀라웠습니다. 
벌써 한 20여 년 전쯤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제가 사목국장 겸 사무처장을 하면서 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는데 한 번은 교구의 본당사무직원들과 함께 1박2일 일정으로 경북 북부지방 성지순례를 갔었습니다.
그때 마회장님이 가이드를 하셨는데, 평소에 잘 들어보지도 못했고 가보지도 못했던 상주 멍에목, 봉화 우련전, 영양 곧은정, 진보 머루산, 청송 노래산, 문경 여우목 등지를 순례하였습니다. 이 지명들이 대부분 1815년 을해박해와 1827년 정해박해 때 붙잡혀서 대구로 압송되어 경상감영 옥이나 관덕정 언덕에서 순교하신 분들이 살았던 교우촌 장소들입니다. 대부분 산 중턱이나 산골짜기에 있는데 마을은 없고 마을 흔적만 남아 있는 곳입니다. 특히 청송 노래산은 한 시간 이상 등반을 하여야 하였는데 우리보다 연세가 훨씬 많으신 회장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빨리 걸으시는지 놀라웠습니다.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고, 하나라도 더 들려주고 싶은 그 열정과 믿음,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화를 잘 내지 않으시고 온유함을 보여주시는 그 인품은 참으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 7년 전 ‘교회사 연구 50주년 기념논총’을 봉정하는 축하 자리에서 마회장님께서 연세가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마회장님이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나? 저 일을 누가 대신 하겠는가? 이것 참 큰일이다.’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제 정말로 돌아가셨으니 참으로 큰일입니다. 
그래서 남아있는 우리들이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회장님의 유지를 받들어서 지극한 정성과 기도와 신앙으로 연구를 깊이 하고 순교자현양과 순교자 신심고양을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마회장님을 기쁘게 하늘나라에 보내드리는 길이라 생각됩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세상을 떠난 마백락 글레멘스 회장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