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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를 통해 전해지는 성유 향기 (성유축성미사 강론)
   2019/04/19  7:42

성유축성미사

 

2019. 04. 18 주교좌범어대성당

 

오늘 우리는 이 미사 중에 교회가 앞으로 일 년 동안 사용할 병자성유와 예비신자 성유, 그리고 축성 성유를 축성할 것입니다. 병자성유는 사제가 병자성사를 집전할 때 병자에게 바르는 성유이며, 예비신자 성유는 세례성사 때 예비신자를 위한 구마기도를 바치고 바르는 기름입니다. 그리고 크리스마 성유라고도 하는 축성성유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와 성품성사를 집전할 때 사용하는 성유입니다. 이 축성성유는 성당과 제대 축성 시에도 사용됩니다. 
그래서 오늘 새로 축성한 성유를 교구의 모든 신부님들이 받아서 앞으로 일 년 동안 신자들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교회법 847조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교역자는 성유를 사용하여야 하는 성사들을 집전할 때 주교에 의하여 최근에 축복된 기름을 사용하여야 한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며 묵은 성유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본당 사목구 주임은 자기의 소속 주교에게서 성유를 받아 적합한 성유함에 성실히 보관하여야 한다.”
  
오늘 복음말씀(루카 4,16-21)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막 시작하시면서 있었던 일로서, 안식일을 맞이하여 나자렛의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를 펴시고 읽으시는 장면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읽으신 이사야서 61장 말씀은 당신이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또한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 제자로 불러주시고 사제로 세워주신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드러내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일찍이 신부님들을 선택하시어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 또한 당신의 영을 보내 주시어 천상능력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고,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재 대신 화관을,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맥 풀린 넋 대신 축제의 옷을 입혀주게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주님께서 하시던 일을 우리 신부님들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님들을 ‘주님의 사제들’이라 불리고, ‘우리 하느님의 시종들’이라 불릴 것이라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제의 품위만큼 소중하고 영예로운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성인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욕심이나 사사로운 마음을 가지고 사제가 된다면 하느님 앞에서 이처럼 가련하고 불쌍한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신부님들이 더욱 예수님을 닮은 사제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격려해 주시길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13년 성유축성미사 강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사제는 자기 백성이 어떻게 도유되었는지 알아봅니다. 이것은 스스로 자신이 좋은 사제인가를 분간하는 확실한 검증법이기도 합니다. 나의 백성이 기쁘게 도유 받았는지는 미사를 마치고 나올 때 기쁜 소식을 받은 사람의 얼굴인지 아닌지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성유 향기를 느낄 때, 주님께 도달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우리를 찾아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그분 백성과 이런 관계를 유지할 때, 은총은 우리를 통해 드러나고,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중재자로서의 사제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항상 은총이 살아있게 해야 하고,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물질적이고 허무맹랑한 요청이라도 들어주고자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성이 바라는 것은 향기 나는 기름으로 도유를 받고자 하는 것이고, 그들은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본당 신부님이 좋은 사제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신자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쁜 소식을 받을 사람의 얼굴인지 아닌지를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를 축복해 주십시오.’ 등 요구가 많습니다. 그런 요구들을 기꺼이 들어주라는 말씀입니다. 
성유는 가져가서 잘 보관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을 도유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백성들을 도유하려면 백성들에게 좀 더 가까이 가야 합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인도하고, 아파하고 슬퍼하는 사람,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찾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 성유축성을 하기 전에 신부님들의 서약 갱신이 있을 것입니다. 모든 신부님들은 자신이 예전에 사제품을 받았던 그때를 기억하며 주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제 직무에 더욱 충실할 것을 새롭게 다짐하실 것입니다. 우리 교우 분들은 오늘 서약 갱신하시는 신부님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올해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을 맞이하시는 이강언 바오로 신부님과 이재명 바오로 신부님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사제나 주교나 서품 받을 때 서품 성구나 사목모토를 정합니다. 이번에 금경축을 맞이하시는 두 분 신부님의 상본을 보니까 이강언 신부님은 시편 23장 1절의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라는 말씀이고, 이재명 신부님은 “오, 나의 하느님이시여, 나의 모든 것이여!”라는 ‘준주성범’에 나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들을 늘 마음에 새기며 사제생활을 하겠다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옛날 중국의 왕들은 왕좌의 오른쪽에 경구를 새겨놓고 의자에 앉을 때마다 그 말을 되새기며 자신을 가다듬었다고 합니다. ‘좌우명(座右銘)’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의자의 우측에 새긴 글이라는 뜻입니다. 신부님들의 서품 성구는 의자가 아니라 상본에 적혀있고 마음에 새겨져 있지만 신부님들의 좌우명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늘 자신의 서품성구의 말씀처럼 사시면 기쁜 사제생활을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중국 은(殷)나라의 시조 탕왕(湯王)은 얼굴을 씻는 대야에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란 글을 새겨놓고 매일 얼굴을 씻을 때마다 그 글을 보면서 몸만 아니라 마음과 정신을 매일 새롭게 가지겠다는 다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신부님들께서도 매일 몸을 씻듯 매일 서약을 새롭게  다짐하면서 사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당신의 사제로 불러주시고 기름 부어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시다.
 
오늘 제2독서인 요한 묵시록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셨고,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