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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삶의 종착지를 향해 희망을!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 강론)
   2019/08/16  17:29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

 

2019. 08. 15 사수성당

 

찬미예수님!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성모님께서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성모승천대축일’이면서 우리 민족이 일제 35년간의 압박에서 해방된 ‘광복절’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쁘고 복된 날에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여러분과 우리 교회와 우리나라 곳곳에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오늘 이 미사 중에 23분의 형제자매들이 세례성사를 받습니다. 묵은 자아가 죽고 새로운 사람,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세례 받을 이 분들에게 주님의 큰 은총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모승천에 관해서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초대교회 때부터 오랜 세기 동안 있어왔던 전승입니다. 그러나 믿을 교의로 선포된 것은 1950년 교황 비오 12세께서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이라는 회칙을 발표하심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원죄 없으신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께서는 지상 생애의 여정이 끝난 다음 그 영혼과 육신이 천상의 영광 안에 받아들여지셨다.”

우리말로는 ‘성모승천’과 ‘예수승천’이 똑 같은 말로 들리지만 라틴말로는 구별이 됩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능동적으로 ‘Ascensio’(올라감)라고 표현하고, 마리아의 승천은 수동적으로 ‘Assumptio’(올림을 받음)라고 표현합니다. (영;Assumption). 성모승천은 곧 하느님께서 성모 마리아를 하늘에 불러올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우리나라는 성모승천을 ‘성모몽소승천’(蒙召昇天)으로 표현하였었습니다.

오늘 미사의 감사송에서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의 아드님께서 동정 마리아의 몸에서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태어나셨기에, 주님께서는 마리아께 무덤의 부패를 겪지 않게 섭리하셨나이다.’하고 기도드립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으로 하여금 무덤의 부패를 겪지 않도록 지상 생애가 끝나자마자 그 영혼과 육신을 하늘나라에 불러올리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인간이 하느님께 온전히 받아들여졌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맡기신 성모 마리아께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에 온전히 참여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더 나아가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잉태되시는 순간부터 마지막에 이르시기까지 하느님의 은총을 충만히 받으신 분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러면 이 성모승천 교의가 우리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에게는 이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성모 승천은 우리 믿는 모든 사람의 구원과 그 충만함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매 주일마다 ‘신앙고백’을 통하여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는다.’고 하는데, 우리의 이 근본적인 희망이 마리아에게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몇 년 전 성모승천대축일 삼종기도에서 말씀하시기를, “성모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것은 우리 삶의 종착지가 (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집임을 보여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모승천대축일은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광복절 이상으로 기쁜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나라 안팎의 정세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서로간의 신뢰가 무너지고 약육강식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다’더니 세상에 믿을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상황이 사면초가 같습니다.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북한까지 어느 한 나라 만만한 나라가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얼마 전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키고 수출규제를 가함으로써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을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하겠다며 일본 물건 안 사기, 일본 여행 안 가기 등이 전 국민적으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1941년 대동아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은 1945년 8월 6일에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맞았고, 8월 9일에 나가사키에 또 원자폭탄을 맞고 8월 15일에 항복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일본이 원자폭탄 두 방을 맞고서야 히로히토 일본 왕이 항복을 했던 바로 그날 우리나라도 해방이 되었던 것입니다.

일본 나가사키의 우라카미 성당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여기당’이라는 조그만 집이 한 채 있습니다. 그 집은 1951년 5월 1일 43세의 나이로 원자병으로 두 아이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살았던 나가이 다까시 박사의 두 평짜리 집입니다. 그 집 옆에 비석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6+9=15라는 숫자가 적혀있습니다. 이 숫자가 무엇을 말하는지 아십니까? 8월 6일 있었던 히로시마의 희생과 8월 9일에 있었던 나가사끼의 희생이 합쳐져서 전쟁의 종결을 가져왔고 평화가 오게 되었다는 다까시 박사의 해석이 있었기 때문에 그 숫자를 새긴 비석을 그 집 옆에 세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평화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로 희생하고 양보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종전 후 나가이 다까시 박사는 많은 저서를 통해 평화를 외치고, ‘여기애인(如己愛人)’을 외쳤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헬렌 켈러 여사, 필리핀의 막사이사이, 일본 천황까지 여기당을 방문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나가이 다까시 박사를 잊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당을 찾는 사람들도 별로 없습니다. 더 나아가 일본 아베 총리는 헌법을 개정하여 일본을 합법적으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겠다고 합니다. 정말 가깝고도 먼 나라이고 알 수 없는 나라입니다. 이는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몇 차례 이루어져서 잘 될 것 같더니만 이제는 다시 되돌아가는 느낌입니다.

우리 모두가 평화를 바라지만 평화는 왜 우리 손에 들어오지 않는 것일까요? 결국은 속죄와 용서와 화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여기애인(如己愛人)’의 정신, 이웃을 자기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의 사도,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모후여, 저희와 우리 민족과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