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께 축성되고 자신을 바친 사람 (예수성심시녀회 종신서약미사 강론) |
2019/12/11 17:11 |
예수성심시녀회 종신서약미사
2019. 12. 09. 한국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오늘 하느님과 교회 공동체 앞에서 종신서약을 하시는 일곱 분의 수녀님들에게 축하를 드리며 하느님의 은총과 복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수도자가 종신서약을 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여러분들이 잘 아실 것입니다. 제가 이 강론 후에 종신서약을 청하는 수녀님들에게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매 여러분, 이미 세례성사로 죄에서는 죽고 주님께 봉헌된 여러분은 종신서원의 끈으로 하느님께 더욱 완전히 봉헌되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수녀님들은 “예, 원합니다.”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면 또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복되신 성모 마리아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본받아 정결과 순명과 가난의 생활을 받아들이고 영구히 살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수녀님들은 다시 “예, 원합니다.”하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이 질문과 대답 속에 종신서약이 무엇을 뜻하는지가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수녀님들이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을 위하여 종신토록 자신을 봉헌하는 삶을 산다고 하여 수도생활을 ‘봉헌생활’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봉헌생활’이란 용어를 ‘축성생활’이라는 말로 변경하기로 주교회의에서 결정하였습니다. 라틴어 ‘Vita consecrata’ 라는 말을 지금까지 ‘봉헌생활’이란 말로 번역하여 사용하여 왔는데, 전국남녀수도장상연합회에서 이 말의 정확한 번역이 ‘봉헌생활’보다는 ‘축성생활’로 해야 맞는다고 하면서 용어를 변경하여 줄 것을 주교회의에 건의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교회의 총회에서 몇 차례에 걸쳐서 논의를 하였지만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가 불과 일주일 전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에서 그 건의를 받아들여 ‘봉헌생활’이란 말을 ‘축성생활’이란 용어로 변경하기로 하였습니다.
축성(祝聖), 즉 Consecratio는 사람이나 물건을 하느님의 일에 쓰기위해 성별(聖別)하여 거룩하게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래서 수도생활을 축성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업에 쓰시기 위해서 어떤 사람을 세상 사람들 속에서 뽑아 거룩하게 하시는 데에 더 강점을 두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주도권을 인간의 의지보다는 하느님께 두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부르셨고 우리는 거기에 응답할 뿐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 15,16)
그렇게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축성된 사람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거룩하게 하심에 감사드리며 사랑의 응답으로써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루카 1,26-38)에서도 하느님께서 먼저 주도권(initiative)을 가지시고 어느 날 갑자기 마리아를 부르십니다. 마리아는 깜짝 놀라고 두려웠지만 가브리엘 천사의 설명을 듣고 이렇게 응답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저는 1970년 초에 어떤 책 한권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책 제목은 ‘태시기가’입니다. 그 책은 마산교구의 이태식 사베리오 부제님이 남긴 편지글과 일기 및 콩트 등을 그가 하느님께 간 지 백일 만에 신학교 동기들이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이태식 부제님은 1968년 12월 19일에 부제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듬해인 1969년 8월 10일에 마산 앞바다에서 수영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가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막 올라갈 무렵이었는데 그 책은 저에게 충격적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더 강하게 저를 부르시는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 후 한 10여 년 후에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라는 책이 나왔지요. 이 책은 김정훈 부제님의 일기를 엮은 책이지요. 김정훈 부제님은 오스트리아 인스부륵에서 유학 중에 등산을 갔다가 하느님 나라에 가셨는데, 1960년대 우리나라의 유명한 사도 법관이셨던 김홍섭 판사님의 아들 되십니다.
그건 그렇고, 올해가 이태식 부제님이 떠난 지 50년이 되었고, 마침 이태식 부제님의 바로 옆 집 친구 되신다는 어떤 분의 초대로 지난 5월에 경남 고성에 있는 이 부제님의 고향마을과 마산교구 묘지를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태시기가’라는 책을 50년 동안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그 책을 다시 꺼내어 읽게 되었는데 이태식 부제님이 부제품을 받기 이틀 전에 쓴 글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저를 선택하셨습니다. 주여, 저는 이제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당신 이외는 누구도 저의 영혼과 육신을 빼앗지 말게 하소서.”
‘태시시가’ 란 책의 끝 부분에 이태식 부제님을 그리워하는 몇몇 지인들의 글이 실려 있는데, 거기에 ‘마리나 수녀’라는 분의 글이 있습니다. 마리나 수녀라는 분이 탁 미리암 수녀님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그 수녀님 글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크고도 넓은 너의 열망을 다 어디 묻어두고 기다림으로 지루한 생을 마치고 주의 부르심으로 향하였는가? 가는 길이 같은 길동무야! 아, 복된 너의 죽음! 가다보면 가는 길이 한 곳인 그곳. 네 못 다 이룬 소망은 너를 못내 못잊어 하는 너의 벗들이 언젠가는 채워 주리라.”
‘가는 길이 같은 길동무’라는 표현이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던져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 오전에는 가톨릭치매센터 성당에서 ‘양수산나 여사 한국 오심 60주년 감사미사’를 드렸습니다. 양 수산나 씨를 아시지요? 사도직 협조자(Auxilista)입니다. 이분이 60년 전 바로 어제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당시 효성여대에 줄 피아노 일곱 대를 실고 한 달이 넘는 항해 끝에 부산항에 도착하였던 것입니다.
양 수산나 씨가 우리 교구와 한국교회에 기여한 공로를 다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제 80 중반이 되셨는데 지난봄에 불현 듯이 치매센터에 들어가셨습니다. 크게 아프신 것도 아닌데 왜 치매센터에 들어가셨는가 하고 걱정을 하였는데 그곳 생활에 아주 기뻐하시고 만족하고 계셔서 다행이었습니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나서 옥스퍼드대학까지 졸업한 사람이 무엇 때문에 한국에 오셔서 그 고생을 하셨을까? 보통 세상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느님께 축성되고 자신을 바친 사람은 이 세상의 어떤 명예나 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할 뿐이며 하느님의 나라가 실현되기를 바랄 뿐인 것입니다.
대림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대림절은 강생의 신비, 성탄의 신비를 묵상하고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강생의 신비를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더 낮은 곳으로, 더 어려운 곳으로, 손길이 더 필요한 곳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낮춤, 무한한 비움의 신비를 우리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그렇게 사셨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