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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시대의 순교자 (성 이윤일 요한 축일 미사 강론)
   2020/01/22  14:31

성 이윤일 요한 축일 미사

 

2020. 01. 21. 관덕정순교기념관

 

오늘은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이지만 우리 교구 제2주보성인이신 ‘성 이윤일 요한 순교자 기념일’이기에 성 이윤일 요한 축일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지난 12일부터 어제까지 우리 교구 이주사목을 담당하고 계시는 이관홍 신부님을 초청하여 ‘나그네, 순례의 삶과 영성’이란 주제로 강의를 들으면서 매일 기도를 바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노력들은 우리가 순교자들의 삶을 본받고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가는 삶을 살고자 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순교자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순교하신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살기를, 언제든 목숨을 내놓아도 후회 없을 만큼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순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순교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가장 철저히 지키고 따랐던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윤일 요한 성인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오늘은 현대의 다른 순교자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지난 여름 7월에 강원도 양양에 있는 ‘예수 고난회’ 피정의 집에서 2박3일간 휴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 피정의 집 근처에 ‘38선 티모테오 길’이라는 길이 있었습니다. 그 순례길은 6.25한국전쟁 때 순교하신 이광재 티모테오 신부님(1909-1950)의 이름을 딴 순례길입니다.

당시 이광재 신부님은 양양본당의 주임신부님이셨는데, 1945년 해방 후부터 1950년 6.25전쟁 전까지 북한에서 수없이 넘어오는 사람들, 특히 성직자 수도자 교우들이 38선 근처에 있는 양양성당에 들리면 숨겨주었다가 남쪽으로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양양성당이 38선 북쪽으로 12Km 떨어진 곳이고 이미 공산화가 된 이북 땅이기 때문에 신부님이 하시던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위험을 느껴서 신부님도 남으로 피신하시라고 권유하였지만, 이광재 신부님은 “내가 돌보아야 할 신자가 38선 이북에 하나도 없을 때 가겠다.”고 하시며 거절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50년 5월 초에 강원도 북쪽의 평강본당의 백응만 신부님께서 공산군에게 피랍되자 이광재 신부님은 그곳 신자들을 돌보기 위해 성모승천대축일 전에 돌아오겠다며 북으로 떠났습니다. 목자가 없는 평강본당 신자들을 찾아다니며 성사를 주고 하다가 결국 체포되어 원산 와우동 형무소의 감방에 수감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국군과 유엔군의 진격으로 후퇴하던 공산군은 1950년 10월 8일 밤에 포로들을 묶어서 산중턱 방공호로 끌고 갔습니다. 방공호에 들어갔더니 엎드리라는 명령과 함께 갑자기 총탄이 쏟아졌던 것입니다. 얼마 후 사람들이 “살려 달라! 물 달라!”하고 소리를 치는데 “제가 가겠어요. 기다리세요. 제가 물을 드릴게요.”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시 그 방공호에 같이 있었으나 총을 맞지 않고 살아남은 한준명 목사님과 당시 평강고등학교 학생이었던 권혁기 씨의 증언에 의하면, 자신도 총을 맞아 사경을 헤매는 이광재 티모테오 신부님이셨던 것입니다. 이광재 신부님은 성모승천 전에 양양본당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시고 결국 총 맞은 다음 날인 10월 9일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근현대 신앙의 증인,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를 시복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광재 티모테오 신부님도 그 80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의 현대의 순교자가 있습니다. 지난 14일이 이태석 요한 신부님(1962-2010) 선종 10주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바로 전날인 13일은 우리 교구의 윤임규 토마스 신부님(1948-1994)께서 선종하신 지 26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늦게 유학을 가서 대만 보인대학교에서 ‘주역’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고, 귀국하시기 전에 중국 어느 수녀원에 피정 지도하러 가시다가 어느 시골길에서 교통사고로 하느님 나라로 가시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고 그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윤 신부님은 참 바르게 사셨던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10월 ‘전교의 달’에 즐겨 부르는 ‘전교의 노래’를 작사하신 분입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10년 전부터 매스컴에 의해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지난주에 시내 만경관에 가서 다큐 영화 ‘울지마 톤즈 2, 슈크란 바바.’를 봤습니다. ‘슈크란 바바’는 ‘감사합니다. 하느님’이란 뜻이라 합니다. 하여튼 이태석 신부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는 현대의 순교자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신부님이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펼쳤던 삶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었습니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단순히 돕는 차원이 아니라 그들의 친구가 되고 벗이 되고 식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서 일정 기간 동안 봉사를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마음을 먹고 시간을 내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특히 열악하기 그지없는 환경의 나라에 가서 그들과 함께 살고 그들의 친구가 된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이태석 신부님을 그런 일을 정말 기쁘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태석 신부님이 작사 작곡한 노래가 몇 개 있는데 ‘묵상’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학생 때 작곡한 것이라는데 참으로 놀랍습니다. 아마 신학교 들어가기 전에 작곡한 것 같습니다. 2-30년 전에 수원신학교의 갓등중창단이 불러서 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저절로 묵상이 되는 노래입니다.

 

“십자가 앞에 꿇어 주께 물었네. 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왜,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주께 물었네.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 하느냐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 주님 말씀하셨지.

사랑, 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난 영원히 기도하리라. 세계 평화 위해.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난 영원히 기도하리라. 세계 평화 위해.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이태석 요한 신부님은 이 노래 가사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며 살다가 가셨습니다.

 

이번에 성안드레아본당, 동촌본당, 두류본당, 내당본당 등의 청소년들이 만든 관덕정 UCC 입상작들을 봤습니다. 모두 훌륭하였습니다. 오늘 글짓기와 UCC 입상자 학생들이 많이 참석하였는데 축하드립니다. 내당본당의 UCC 작품의 마지막 멘트가 오늘 축일의 의미를 잘 정리해 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순교자들의 삶을 통해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성 이윤일 요한과 한국의 모든 순교 성인 복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