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그룹웨어
Home > 교구장/보좌주교 > 교구장 말씀
제목 자기 비움의 신비 (주님 세례 축일 미사 강론)
   2021/01/09  18:12

주님 세례 축일 미사

 

2021. 01. 10. 주교좌 계산성당

 

찬미예수님.

우리나라에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지 1년이 다 되어갑니다만, 아직 그 기세가 꺾이지 않아 오늘도 온라인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하루빨리 코로나19가 물러나고 우리의 일상을 되찾을 뿐만 아니라 활발한 신앙생활을 다시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한테 세례를 받으신 일을 기념하는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주님 세례 축일을 맞이하여 우리도 예전에 받았던 세례를 기억하고 세례의 은총을 다시 한 번 깊이 체험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의 세례는 아기예수께 대한 동방박사들의 경배와, 카나의 혼인잔치에서의 기적과 더불어 이 땅에 오신 구세주 예수님의 존재가 세상에 공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 세례 축일로서 성탄시기가 마무리되고 연중시기가 시작됩니다. 주님의 세례를 기점으로 주님의 공생활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네 개의 복음서는 모두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 받은 사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마르코 1,7-11)에서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7-8)

세례자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실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증언하면서 지극한 겸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자신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고, 드디어 예수님의 시대가 왔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우리에게 세례를 주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인간 세상 안으로 오신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죄가 전혀 없으면서도 죄인처럼 머리를 숙이고 세례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내려오시고, 이어서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11)

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입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겸손과 자기 비움의 신비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 구원을 위하여, 우리와 하나 되기 위하여 보여주신 신비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분은 말로만 사랑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행동으로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시며,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사람이 되어 오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성탄은 인간을 사랑하시고 그 사랑 때문에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사건입니다. 참된 사랑은 자신을 고집하고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을 버리고 상대방 것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의 박해시절에 신자들이 지하묘지에서 만날 때 이런 이야기를 즐겨 들었다고 합니다.

한 총각이 어떤 처녀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어느 날 밤에 그 처녀의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방 안에서 처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구십니까?”

그래서 총각은 “접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방 안에서 “이방은 좁아요. 당신이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라는 처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총각은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총각은 처녀가 왜 자기를 거절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총각은 슬픔을 잊기 위해 세상을 몇 년 간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지 생각이 불현 듯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처녀의 집을 찾아가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세요?” 하고 안에서 처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총각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입니다.”

그러자 방문이 열리고 그 처녀가 뛰쳐나와 그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을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이 이야기는 단순히 남녀의 사랑 이야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의 사랑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나’가 아니라 ‘당신’이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 영혼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타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이신 하느님이십니다.

마찬가지로 신앙 깊은 영혼과 예수님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던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티아서 2,20) 우리도 바오로 사도처럼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은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례 때에 물 몇 방울이 몸에 부어졌을 뿐이지만, 세례에서 일어난 일은 세상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처럼 참으로 위대한 일이었다.”

사실 세례를 통해 우리 인생이 바뀌었고, 우리의 존재가 바뀌어 진 것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항,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7항 참조)

그 한 사건, 그 한 사람을 우리는 만났습니다. 즉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주님을 만났고 주님을 마음 깊이 영접하였으며 그분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 안에 살며 그분은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세례의 은총을 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례 받은 사람은 많지만 주님의 참된 제자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을 맞이하여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주님의 제자로,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재의 모습이 어떠한지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여 새롭게 다시 출발하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이런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코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