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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항상 즉시 기쁘게 (예수성심시녀회 종신서원미사 강론)
   2021/12/10  10:36

예수성심시녀회 종신서원미사

 

2021. 12. 09.

 

오늘 네 분의 수녀님들이 하느님과 교회 공동체 앞에서 종신서원을 하게 됩니다. 좋으신 하느님께서 이 수녀님들에게 필요한 은총과 사랑을 내려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종신서원을 원래는 어제 하기로 되어있었는데 어제 제가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있었던 ‘서울대교구 교구장 착좌식’에 참석해야 하는 일 때문에 오늘 하루 늦게 종신서원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종신서원식을 하루 연기하는 넓은 아량을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제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었는데, 예수성심시녀회 설립일이기도 하지만, 한국천주교회 수호자 축일이며 조선교구의 전통을 이어가는 서울대교구의 주보축일이기도 한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날 많은 행사가 잡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종신서원을 하시는 수녀님들이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모범과 전구로 자신이 서원한 정결과 순명과 청빈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열심히 기도드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로 창세기 12,1-4을 봉독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장면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어느 날 갑자기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아브라함은 그 부르심에 즉시 응답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43,1에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15,16에서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수도생활을 ‘축성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업에 쓰시기 위해서 어떤 사람을 세상 사람들 속에서 뽑아 축성하여 거룩하게 하시는 데에 강점을 두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주도권을 인간의 의지보다는 하느님께 두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부르셨고 우리는 거기에 응답할 뿐인 것입니다.

어제 읽었던 루카복음 1,26-38에서도 하느님께서 먼저 주도권(initiative)을 가지시고 어느 날 갑자기 마리아를 부르십니다. 마리아는 깜짝 놀라고 두려웠지만 가브리엘 천사의 설명을 듣고 이렇게 응답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의 이 응답을 들을 때마다 마리아의 그 깊은 영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한 마디의 응답 안에 마리아의 겸손과 순명과 믿음의 성덕이 다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우리가 잘 나고 지혜로워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늘 복음(마태 11,25-30)에 나오듯이 하느님께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잘난 것도 없는, 철부지 같은 우리들을 부르시고 당신의 신비를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하느님의 은총이요 선물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축성된 사람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거룩하게 하심에 감사드리며 ‘항상’, ‘즉시’, ‘기쁘게’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제 서울대교구장으로 착좌하신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님께서는 대학생 때 대구에서 개최되었던 포클라레 마리아뽈리에 참석하였다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반 대학(서울대 공대)을 졸업하자마자 신학교에 편입학하였고 얼마 후에는 가르멜수도회에 입회하여 사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일치의 영성을 살아가는 포클라레의 모토가 ‘항상 즉시 기쁘게’라고 합니다.

축성생활을 하시는 수녀님들도 하느님의 부르심에 ‘항상 즉시 기쁘게’ 응답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정결과 순명과 청빈의 삶을 항상, 즉시, 기쁘게 사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사실 정결과 순명과 청빈의 삶은 세상의 흐름과는, 인간 본성의 성향과는, 어떻게 보면 반대되는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그런 삶을 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대한 끊임없는 기도와 의탁과 봉헌이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은총이 있어야 하고 성인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서품식이나 종신서원식에서 당사자는 부복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성인호칭기도를 바치며 하느님과 모든 성인들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렇게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콜로 3,12)

우리 수녀님들이 그렇게 종신토록 서원한 대로 잘 살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열심히 기도드리도록 합시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