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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종신서원 미사 강론)
   2022/02/03  11:32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 종신서원

 

2022. 02. 02.

 

어제가 설날이었는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온 나라와 온 세계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까, 어젯밤 자정을 기준으로 최초로 확진자 수가 2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구는 1천 명이 넘었습니다. 설 연휴라서 검사 건수가 전에 비해 적은데도 연일 기록을 세우고 있습니다. 걱정이 아니 될 수 없는데, 하여튼 새해에는 코로나19가 물러가고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을 다시 활기차게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어수선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오늘 이 미사를 드립니다만, 이 미사 중에 종신서원을 하시는 세 분의 수녀님들에게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그리고 주보성인이신 성 바오로 사도께서 이 수녀님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열심히 전구해 주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주님 봉헌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지 40일째 되는 날 성모님께서 정결례를 치르고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오늘 주님 봉헌축일을 ‘축성생활의 날’로 정하셨습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해마다 ‘주님 봉헌축일’이며 ‘축성생활의 날’인 오늘 종신서원을 합니다. 그 이유와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거의 모든 성당에서는 1년 동안 전례에 사용할 초를 축복합니다. 초는 자신을 태워서 빛을 내는데 축성과 봉헌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도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봉헌한다.’는 말은 ‘자신을 바친다.’는 말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는 것입니다. 자신을 하느님께 바쳤기 때문에 이제 자신은 없고 하느님만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만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필리피서 3,8-14)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3,8)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렇게 예수님이라는 지고한 가치 때문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쓰레기처럼 여기고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 수녀님들도 예수님이라는 엄청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수녀님들 중에는 버렸다고 하면서 버린 것에 미련을 두거나 아쉬워하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바오로 사도와 같은 결심, 결의가 필요합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예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쓰레기로 여기고 다 버린 대신에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얻으려’(9절)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3,12)

이 말씀처럼 우리도 예수님 때문에 자신의 것을 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나의 주인이요 나의 주님이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오늘 우리 수녀님들께서 분명히 인지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수녀님들이 오롯이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서 온전히 봉헌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도원에 들어온 지 10년이 되고, 20년이 되고, 또 30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어정쩡하게 사시는 분들이 더러 계십니다. 왜 확신을 갖고 살지를 못합니까? 무엇이 그렇게 잡아당깁니까?

홀로 되신 어머님을 돌볼 사람이 없다며 수도원을 나가는 수녀님을 봤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갈 수도 있지만, 하느님과의 약속을 그렇게 깰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하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여라.”(루카 9,60)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확실하게 끊을 것을 끊고, 주님과 주님 사업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바오로 사도처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필리 3,13)

사실 의지가 약하고 육신이 약한 우리로서는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은총이 필요하고 성모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 15,16)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우리들의 관계가 얼마나 대단한 관계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당신 사업에 쓰시겠다고 친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뽑아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주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딴 데로 나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른 나무 가지처럼 말라버리고, 혹은 누가 가지고 가서 태워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5,4-5)

우리는 세상 살아가면서 수많은 갈등과 시련과 고통을 겪기도 하고 많은 땀과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성숙해지고 익어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늘 주님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 안에 사는 기쁨이 흘러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매화가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것처럼, 축성된 우리들의 존재와 삶으로 주님을 세상에 가장 잘 드러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