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차 사제피정 파견미사

2022. 07. 08.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한티피정의 집

날씨가 더운데 피정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십여 년 전만해도 한티피정의 집에 선풍기가 없었는데 이번 여름에는 선풍기 없이는 못 살 것 같습니다.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음을 몸소 느끼게 됩니다. 이젠 겨울이 되어도 눈도 오지 않고 얼음도 얼지 않습니다. 봄과 가을은 짧아지고, 무더운 여름만 길어지는데, 가끔씩 스콜 같은 소나기가 내리는 것이 우리나라가 이미 아열대기후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이상기후, 기후위기라고 하는데 이것은 순전히 인간이 초래한 것입니다.

하여튼 여름에 한티에 피정하러 오는 것은 피서하러 오는 기분이라는 점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피정은 피정답게 해야 합니다. 같은 피정을 하지만 얻는 효과는 피정하는 사람 각자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정하러 왔으면 피정에 전념하는 것이 좋습니다. 피정은 지도신부님이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이 하는 것입니다. 피정의 승패는 강의가 좋다든가, 시설이 좋고 음식이 좋다든가 하는 데에 달려있기 보다는 얼마나 자신이 내적으로 침묵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이번 피정에서 정규환 신부님의 말씀처럼 잠심할 수 있고, in going, out going, up going 할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는 호세아 예언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죄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호세 14,2)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나에게로 돌아오라.”

피정은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세상에 멀리 나가 있던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와 그분 품안에 기대어 머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뜻과 그분의 마음을 다시 알아차리고 세상에 나가 그것을 실천할 힘을 받는 것이 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독서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습니다.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호세 14,10)

우리는 죄인들처럼 길에서 비틀거리지 말고 올곧은 주님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으로 읽은 마태오복음 10,16-23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불러서 파견하시는데, 파견하시기 전에 몇 가지 일러주는 말씀 중의 한 부분입니다.

어제 복음에서는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마태 10,7)고 하시면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마태 10,16-23)에서는 예수님께서 더욱 심각한 분위기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16)

예수님께서 ‘이리 떼’라고 표현을 하셨을 만큼 과연 세상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나무에 매달아 죽일 정도로 악랄하고, 온갖 중상모략과 이전투구가 판치는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에 사랑하는 제자들을 파견한다는 것은 예수님으로서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16)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박해를 예고하십니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17-18)

사실 사도들은 수없이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여러 번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고, 여러 번 매를 맞기도 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마흔에서 하나 뺀 매를 다섯 차례나 맞았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2코린 11,24 참조)

그런데 사실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고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서는 것은 그리스도를 증언할 기회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은 그런 기회를 갖게 된 것을 기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22)

루카복음은 이 구절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9)

여기에서 ‘받다’, ‘얻다’라는 말의 그리스어 원뜻은 운동경기에서 승리하여 상을 받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옛날에 올림픽에서 우승을 하면 올리브나무가지나 팔마가지로 만든 월계관을 씌워 주었듯이 순교자들의 그림에도 월계수를 그려 넣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순교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자였던 것입니다.

‘증인’은 자신이 보고 듣고 믿는 것을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순교자들은 목숨을 바쳐 주님을 증언하였습니다. 교회는 이런 증인들로 인해서 자라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한티의 순교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대구대교구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입니까? ‘대충 대충 살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살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들의 관건입니다.

재작년에 유명한 영화음악 작곡가였던 ‘엔니오 모리꼬네’가 9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분의 음악을 들을 겸해서 영화 ‘미션’을 다시 보았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경분쟁의 조정과 선교지 보호의 목적으로 파견된 교황 특사 추기경님이 교황님께 올리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보고서 중에서 이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선교 사제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살아있고, 죽은 것은 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