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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124위 순교복자 시복 10주년 기념미사 강론)
   2024/05/30  16:58

진목정성지 순례자의 집 축복식 및 124위 순교복자 시복 10주년 기념미사

 

2024. 05. 29.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앞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 주례로 ‘한국 순교자 시복식 미사’가 있었습니다. 그 미사 중에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본인의 사도 권위로, 가경자 하느님의 종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앞으로 복자라 부르고, 법으로 정한 장소와 방식에 따라 해마다 5월 29일에 그분들의 축일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이렇게 하여 한국 순교자 124위 복자가 탄생하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천주교회는 해마다 5월 29일에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있는데,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103위 한국 순교 성인 시성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84년 5월 6일에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에 의해서 103분의 복자들이 성인으로 선포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103위 시성 과정에서 당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한국교회가 평신도 중심의 신앙공동체로 시작했다고 알고 있는데, 왜 이들 복자 중에는 초기의 평신도 순교자들이 없느냐?”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사실 103위 성인들이 복자가 된 것은, 1925년에 기해박해와 병오박해 순교자 79위가 시복되었고, 1968년에 병인박해 순교자 24위가 시복되었는데, 이 일을 처음에 추진한 분들이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분들이었습니다. 이분들이 박해 중이었던 조선에 들어와 그 당시의 자료들, 특히 성 현석문 가롤로와 하느님의 종 최영수 필립보 등이 수집한 ‘기해일기’ 등을 가지고 우선 준비하였기 때문에 초기 순교자들이 포함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주문모 야고보 신부님 등의 초창기 순교자들을 포함하여 그 후의 조선시대 순교자들까지 124위를 선정하였고 시복 청원을 하여 드디어 10년 전에 124위 복자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24위 복자 중에는 대구의 순교 복자 20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1분은 1815년 을해박해 때 경상감영과 관덕정에서 순교하신 분들이고, 6분은 1827년 정해박해 때 역시 경상감영과 관덕정에서 순교하신 분들입니다. 

나머지 세 분이 1866년 병인박해 때 이곳 경주 산내로 피난 와서 단석산 범굴에 숨어 살았는데, 1868년에 갑자기 들이닥친 포졸들에게 붙잡혀서 경주 진영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울산 병영으로 이송되어 문초를 받고 참수형으로 순교하셨으니, 이분들이 복자 허인백 야고보, 복자 김종륜 루카, 복자 이양등 베드로이십니다. 그때가 1868년 9월 14일(음력 7월 28일)이었습니다.  

이분들의 시신은 형장까지 따라온 허인백의 아내 박조이에 의해 거두어져서 태화강 강변에 비밀리에 묻혔다가 다시 이곳 진목정 마을 뒷산에 묻혔습니다. 그러다가 대구교구가 설립되고 감천리 묘지가 조성되어 그곳으로 이장을 하였고, 1968년 병인박해 100주년과 병인박해 순교자 24위 시복 기념으로 지은 대구 복자성당 정원에 모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곳 경주 산내 진목정은 1839년 기해박해 후에 형성된 교우촌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850년대에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께서 방문하신 것으로 추정되고, 1860년대 초반에는 성 다블뤼 주교님, 그리고 1860년대 중반에는 리델 신부님께서 사목 방문하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더구나 병인박해를 맞이해서는 순교 복자 세 분이 살았고 묻혔던 곳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성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1974년 9월 복자성월을 맞이하여 경주성당의 이성우 아길로 신부님이 주도하여 경주 빌기에서 진목정 공소 뒷산에 있는 세 분의 합장 묘소까지 도보 순례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1988년에 경주 성건성당의 채영희 요셉 신부님께서 이곳 산 중턱에 범굴을 발견하고 포항제철 가톨릭 교우회의 도움을 받아 동굴로 올라가는 길을 내었습니다. 마침 범굴이 속한 토지 소유주인 반경희 오틸리아 자매님께서 열심한 교우여서 산을 기증해 주셨기 때문에 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2008년 9월에 산내 공소가 산내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이창수 신부님이 부임하여 성지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2011년 3월에 ‘진목정성지 개발위원회’가 발족되었고, 그해 8월에 김용범 신부님이 담당신부로 부임하여 지금까지 계시는 것입니다. 올해로 13년이 되었는데 우리 교구 사제로서 기록을 세우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김용범 그레고리오 신부님이 계시면서 2017년에 ‘순교자 기념 성당’과 봉안당인 ‘하늘원’을 건립하였습니다.(5월 20일 봉헌) 그런데 얼마 후 코로나19로 신앙생활이 멈추는 바람에 순례객이 없었고 더구나 몇 년 전 힌남노라는 태풍으로 범굴 올라가는 길이 다 파손되었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겪고 난 뒤에 ‘순례자의 집’과 ‘허륜이 정원’을 건립하여 오늘 124위 순교 복자 시복 10주년 기념일에 축복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그 많은 과정과 성과들이 있었는데, 이 자리를 빌려 김용범 신부님을 비롯하여 수고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그리고 오늘 주낙영 경주시장님께서도 이 미사에 함께 하셨는데 여러 가지로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로 인하여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이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상생활은 다 회복된 것 같은데, 신앙생활은 다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냉담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가장 좋은 믿음의 본을 보여준 분들이 바로 순교자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순교자들의 믿음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순교자들이 살고 죽고 묻혔던 성지를 방문하고 그분들의 삶을 묵상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요한 12,24-26)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역설적인 말씀으로 들리고 귀에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자연적인 진리의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가 수긍하고 동의하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그 말씀대로 우리가 살고 있느냐?’ 하면, 우리는 ‘그렇다.’ 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그대로 살았던 분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족하고 나약한 사람이지만 이런 성지를 방문하면서 순교자들의 삶을 묵상하고 자신의 성숙한 믿음과 구원을 위하여 그분들의 전구를 빌어야 할 것입니다. 

 

“복자 허인백 야고보와 복자 김종륜 루카, 복자 이양등 베드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 복자 성인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