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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품 (이주민과 함께 하는 한가위 미사 강론)
   2016/09/19  17:11

이주민과 함께 하는 한가위 미사


2016. 09. 11. 교구청 교육원 다동 대강당

 

올해는 9월 15일이 한가위입니다만 오늘 연중 제24주일에 이주민들과 함께 한가위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가위를 맞이하여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한가위는 설, 한식, 단오와 함께 우리 민족의 4대 고유 명절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설과 한가위만 크게 지내고 있습니다.
‘한가위’는 음력으로 팔월 보름을 말하는데, 다시 말하면 ‘팔월 한 가운데’라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가위를 ‘추석(秋夕)’이라고도 하는데 글자 그대로의 뜻은 ‘가을 저녁’입니다. 음력으로 팔월은 가을의 시작이니까 가을 저녁에 뜬 보름달을 연상하게 합니다. 중국에서는 추석을 ‘중추(仲秋)’, 혹은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하지요.
설이나 추석 명절이 되면 한국에서는 귀성(歸城)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예전에 비하여 요즘은 좀 낫습니다. 고속도로를 하도 많이 잘 뚫어놓아서 말이지요. 
다들 그 어려운 귀성 전쟁을 뚫고 고향으로 가서 부모 형제 친척들을 만나 정담을 나누고 제사를 드립니다. 좋은 풍속인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습니다. 고향을 생각하면 부모님 생각, 어릴 적 동무들과 뛰어놀던 생각이 나고 어떤 그리움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 품 같은 포근함과 넉넉함 같은 것을 느낄 것입니다.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갈 처지가 못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분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기를 빕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돌아갈 고향은 하느님의 품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는 ‘돌아가셨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지상에서의 삶은 우리의 본향인 하느님의 품으로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기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옛날 히브리인들은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거쳐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땅을 땀 흘려 가꾼 첫 소출을 하느님께 감사의 제물로 바치며 하느님께 신앙고백을 하고 충성을 다짐했습니다. 그 모든 소출이 다 하느님 덕분이고 하느님께서 주신 것임을 생각하고 그분께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조상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이국땅에서 종살이하며 고생하던 일들을 생각하였습니다. 조상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고, 지금의 이 땅을 가꿀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땅의 첫 소출을 하느님께 바치며 이스라엘 백성은 더 나아가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며 고생하던 일을 생각하며 이제는 그처럼 고생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하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한가위 역시 그런 날입니다. 한 해의 첫 소출을 하느님께 바치며 먼저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농사는 결국 하느님께서 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쓰고 노력한들 하느님께서 제 때에 비를 주시지 않고, 제 때에 햇빛을 주시지 않으면 다 헛수고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 있습니다. 11월 마지막 목요일입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인디언들한테서 농사짓는 법을 배워서 일 년 농사를 짓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날이었습니다. 이들은 추수를 다 하고 난 뒤에 추수감사절 예식을 하였지만 우리 민족은 첫 수확으로 감사의 제사를 올렸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더 성서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한가위에 우리는 조상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난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무수히 많은 외적들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우리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킨 조상들 덕분에 오늘날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고 고생하신 부모님과 조상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의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신지 16년 되었습니다. 40여 년 동안 시골 공소 회장을 했었습니다. 부모님의 신앙이 나의 신앙이 되었고 부모님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과 우리 신앙의 선조들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위에 우리는 어려운 이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진실된 감사는 고통 받는 이웃에 대한 도움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올해가 자비의 특별 희년인데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이웃 중에, 여러분의 동료들 중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을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듯이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온 들판을 헤매는 착한 목자처럼 소외된 이웃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여러분들은 남북으로 갈라져서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이 대한민국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그저께 9월 9일에 북한에서 제5차 핵실험을 하였습니다. 이 땅에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더 이상 무고한 사람들을 잃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 한가위 명절에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가지를 못하는 이 땅의 수많은 남북 이산가족들의 슬픈 마음을 하느님께서 위로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자신의 나라와 고향을 떠나 이 땅에 사시는 여러분들에게도 하느님께서 큰 위로와 기쁨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