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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난을 함께 나눌 때 (마더 데레사 수녀 시성 감사미사 강론)
   2016/09/27  13:5

마더 데레사 수녀 시성 감사미사


2016. 09. 26. 성모당

 

마더 데레사 수녀님께서 35년 전에 대구를 방문하시고 기도하셨던 이 성모당에서 오늘 우리는 수녀님의 시성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께서는 고 서정길 대주교님의 초청으로 1981년 5월 3일부터 6일까지 서울과 대구를 방문하셨습니다. 저는 그 당시 대덕성당의 보좌신부로 있었는데 4일 저녁에 봉덕동 효성여대 강당에서 있었던 수녀님의 강연회에 참석하였던 기억이 새롭게 납니다. 그 당시 가톨릭신문에 난 기사를 찾아보니 그날 강연회에는 4천명 이상의 청중들이 몰려들어 2천명은 강당 밖에서 확성기로 수녀님의 강연을 들었다고 합니다. 
작은 몸매에 깊게 주름 패인 얼굴의 할머니 수녀님이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가에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수녀님이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사랑을 받는 이유는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실천이요 자비의 실천입니다. 사랑의 실천만큼 세상에 감동을 주는 일은 없습니다. 

 

그 마더 데레사 수녀님께서 드디어 지난 9월 4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 광장에서 있었던 시성식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서 성인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살아계실 때부터 ‘빈자의 어머니’, ‘살아있는 성녀’ 등으로 불리어졌었는데 돌아가신 지 19년 만에, 이례적으로 빨리 성인이 되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시성식 미사에서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데레사 수녀를 ‘데레사 성녀’라고 부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성녀의 거룩함은 우리에게 너무 가깝고 다정하며 유익하여 우리는 계속 그를 ‘마더 데레사’로 부르고 싶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데레사 수녀님을 살아계실 때나 돌아가신 후에나, 그리고 2003년 복자가 되신 후에도 늘 ‘마더 데레사’, 혹은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마더’라는 말이 ‘어머니’를 뜻하지요? 많은 수녀원에서 원장 수녀님을 ‘마더’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인도 콜카타에서 ‘사랑의 선교회’라는 수도회를 세웠으며 1997년 선종하시기 얼마 전까지 원장을 하셨으니까 거의 한평생을 ‘마더 데레사’로 불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황님께서 입에 익은 ‘마더 데레사’를 갑자기 ‘데레사 성녀’로 부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자비의 특별 희년’이 마무리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시성은 아주 시기적절한 느낌이 듭니다. 수녀님은 오늘날 이 각박한 세상에 자비가 무엇인지, 사랑의 실천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보여주고 일깨워주신 분이십니다. 
교황님께서는 시성미사 강론에서 “마더 데레사는 삶의 모든 방면에서 주님의 자비를 너그러이 보여주셨다.”면서 “그는 모든 이를 환대했고 생명의 수호자가 되어 주었으며 태아와 소외된 이, 버려진 이들을 위해 헌신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데레사 수녀님이 1950년에 인도 콜카타에 수도회를 세우고 가장 먼저 하신 사업이 ‘임종의 집’이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집입니다. 그 당시 인도가 얼마나 가난했습니까! 길거리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거두어서 좀 더 인간답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집이었던 것입니다. 
하루는 수녀님이 죽어가는 어떤 노인을 침대에 눕히고 마사지를 열심히 해주고 있는데 그것은 보던 어떤 기자가 “수녀님이 그렇게 하더라도 그 사람은 곧 운명을 할 텐데 무엇 때문에 애써 그런 수고를 하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수녀님이 대답하시기를, “이 사람이 죽는 이 순간만이라도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 느낌을 갖게 하고 싶어서 그럽니다.”하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자란 사람은 자신의 삶을 함부로 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압니다. 
수녀님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대하듯이 대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루카 9,46-50)을 보면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논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곁에 세우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는 하는데 그렇게 살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결코 작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너나 나나 큰 사람이 되려하고 높은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신자들이 소화 데레사 성녀를 많이 좋아합니다. 그런데 소화 데레사 성녀가 살았던 삶을 그대로 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소화 데레사 성녀처럼 아주 작은 사람이 되고자 그 이름을 수도명으로 정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소화 데레사 성녀처럼 보잘 것 없고 작은 일에 온 정성과 사랑을 다 하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수녀님을 ‘하느님의 작은 몽땅 연필’이라 불렀습니다.  


수녀님은 1979년 노벨평화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상을 받았고 온갖 매스컴의 보도를 통하여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수녀님의 삶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사랑의 삶, 섬김의 삶은 변함없이 이어갔던 것입니다. 수녀님은 한결같이 고통 받는 사람들 곁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들을 돌보았던 것입니다. 
35년 전 수녀님이 대구를 방문하셨을 때 가톨릭신문 기자와의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기자가 “수녀님께서는 복음을 그대로 사는 분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 신자들에게 복음을 살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수녀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복음대로 사는 가장 빠르고 단순한 방법은 가족 모두가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 그 가정은 모두 사랑할 수 있게 되고 가정에서부터 사랑이 실천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정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사랑해야할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자는 또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흔히 가난은 국가도 구제할 수 없다고들 합니다. 가난은 과연 구제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수녀님은 대답하셨습니다.
“가난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분과 내가이 세상의 가난을 함께 나누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의 가난을 나눈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꼭 쥐고 싶은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부자가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가난을 함께 나눌 때 이 세상의 가난은 사라질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을 성인품에 올려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우리들도 수녀님의 모범을 따라 하느님의 작은 도구가 될 수 있도록 다짐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