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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근본으로 돌아가십시오. (124위 순교자 시복 감사미사 강론)
   2014/09/22  17:21

순교자 시복 감사미사


2014. 09. 20. 한티성지


 오늘 우리는 순교자성월을 맞이하여 한티 도보성지순례를 마무리하면서 ‘124위 순교자 시복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칠곡 가실성당에서 신나무골성지까지 도보순례를 하였는데 올해에는 2년 전과 같이 가산산성 진남문에서 이곳 한티성지까지 도보순례를 하였습니다. 모두들 수고가 많았습니다. 

 올해는 특히 124위 순교자들이 지난 8월16일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서 모두 복자가 되었기 때문에 순례에 참여하신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지난달 16일에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있었던 시복미사에서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복자’라 부르고 5월 29일에 그분들의 축일을 거행하도록 허락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이 시복 선언이 끝남과 동시에 광화문 광장에서는 성가대의 찬가와 신자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새벽 빛을 여는 사람들’로 이름 붙여진 대형 복자 그림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것은 불과 한 달 여 전에 우리 신자들과 온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 때 그 감동이 아직도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30년 전 103분의 성인을 주신 하느님께서 이번에는 124분의 복자를 주셨습니다. 103분의 성인 외에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복자가 124분이나 생겼으니 이 얼마나 든든합니까! 하느님과 순교자들과 교황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 순교자들은 스스로 진리를 찾아나서는 구도자들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한국천주교회는 세계 교회사에 있어서 유례가 없이 선교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진리를 찾아 나선 평신도들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진리의 복음을 찾아서 받아들인 자랑스러운 신앙 선조들을 우리는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124위 복자 중에 중국인 주문모 야고보 신부님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우리나라 평신도들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 70% 이상이 우리나라에 서양 선교사들이 파견되기 전에 신앙생활을 하다가 붙잡혀서 순교하신 분들입니다. 

 124위 중에 1801년에 있었던 최초의 대박해라 할 수 있는 ‘신유박해’ 때 돌아가신 분들이 53분으로 제일 많습니다. 이처럼 1784년 이승훈 선생님이 북경에 가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돌아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시작한 한국천주교회의 초창기 순교자들이 이번에 가장 많이 복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이 가졌던, 진리를 향한 선각자적인, 구도자적인 그 정신을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승훈 선생님이 북경에 있을 때 주교님과 신부님들로 구성된 사제단이 교회를 이끌어가는 것을 보고 돌아와서는 가성직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고 윤유일 바오로를 북경에 보내어 성직자 파견을 요청하여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 다음에는 지항 사바가 다시 북경에 가서 구베아 주교님을 만나 요청을 하여 그 결과 중국인 주문모 야고보 신부님이 우리나라에 선교하기 위해서 최초로 발을 딛게 되는 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신부님이 입국한 지 6개월이 지나 어떤 사람의 밀고로 신부 체포령이 내려졌고, 신부님은 강완숙 골롬바 집으로 피신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신부님이 머물었던 집주인 최인길 마티아는 신부님이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도록 포졸들이 들이닥쳤을 때 신부 행세를 하며 대신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동료인 윤유일과 지황도 같은 날 체포되어 1795년 6월 28일 이들은 좌포도청으로 압송되어 혹독하게 매를 맞고 순교를 하였습니다. 대신 주문모 신부님은 그 후 신유박해 때 순교하기까지 6년 동안 신자들을 만나 성사를 주거나 선교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795년에 있었던 이 사건을 ‘북산사건’이라고 하고 ‘을묘박해’라 합니다. 을묘박해 때 순교하신 그 세 분도 이번에 복자가 되었습니다. 

 북경의 구베아 주교님이 사천의 디디에르 주교님께 보낸 편지를 보며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북경 천주교회는 조선에서 누구를 파견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윤바오로가 북경에 도착한 것을 보고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이제껏 단 한 사람의 선교사도 들어간 적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단 한 번도 전해진 적이 없는 나라에서 지금 천주교가 기적적으로 새로이 전파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북경교회는 그야말로 뛸 듯이 기뻐하였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이렇게 스스로 진리를 찾아 나섰고, 또 사제 한 사람 모셔오기 위해 수없이 그 먼 중국 북경 길을 오갔으며, 사제를 살리기 위해 대신 붙잡혀서 순교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열심과 열정을 우리가 되찾아야 합니다. 

 124분의 복자 중에는 대구의 순교자가 20분이 계십니다. 경주 산내 단석산에 숨어 있다가 체포되어 울산 장대벌에서 순교를 하고 지금은 복자성당에 누워계시는 김종륜 루카, 이양등 베드로, 허인백 야고보 이 세 분의 순교자들은 병인박해 때 돌아가신 분들이지만, 대구 관덕정과 경상감영 옥에서 돌아가신 17분은 1815년 을해박해와 1827년 정해박해 때 순교하신 분들로서 비교적 초창기 순교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분들은 대부분 1801년 신유대박해 때 박해를 피해 충청도 등지에서 소백산맥을 넘어 경상도 북부지방 산골짜기에 와서 교우촌을 이루고 살던 분들입니다. 

 그리고 이곳 한티순교성지는 이 사람들이 대구에 끌려와서 문초를 받고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혹은 순교를 하고 난 뒤에 남은 유가족들이 대구에 가까운 이곳에 다시 교우촌을 이룬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이 한티도 병인박해 때 포졸들이 습격해서 쑥대밭이 되고 맙니다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분들이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하셨는가? 이런 산골짜기에 뭘 먹을 것이 있다고 식솔들을 이끌고 이 높은 곳에 올라와서 무엇 때문에 생고생을 하셨는가? 하는 의문들이 들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 순교자들이 신앙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자기 삶의 가장 중심에 모시고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느님을 우리 삶의 가장 중심에 모시고 사십니까? 

 124위 복자 중에 대표적인 평신도 중에 한 분이 정약용 선생님의 둘째 형인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입니다. 그는 주문모 신부님이 만든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의 초대회장을 맡았고, 쉬운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를 써서 신자들에게 보급을 하였습니다. 그는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하기 전에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개하고 근본으로 돌아가시오. 근본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여기서 근본이 무엇입니까? 근본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주인이시고 아버지이시고 우리의 근본인 것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바로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근본이신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도보성지순례를 하였고 또 한티 순교자들의 묘소를 참배하였으며 지금은 시복감사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주인이시고 아버지이시고 우리의 근본이신 하느님을 잘 섬기기 위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그렇게 살았고 우리 순교복자 성인들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우리도 그분들의 뒤를 따라 그렇게 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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