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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을 증거하는 일 (선교수녀연합회 연수 파견미사 강론)
   2014/10/06  11:51

선교수녀연합회 연수 파견미사


2014. 09. 30. 


 찬미예수님! 우리 교구 전교수녀들의 모임이 올해로 50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5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각 본당에서 어려운 전교수녀로서의 소임을 다 하시는 여러 수녀님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연수는 잘 하셨는지요? 

 이번 연수 주제가 이광호 교수님의 ‘미디어와 성교육’이라고 하던데, 유익했습니까? 작년 봄인가 주교회의 시작하면서 이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바가 있습니다만, 이 주제가 오늘날 참으로 시급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미처 몰랐던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잘못된 성문화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고, 안다고 하더라도 교회가 이런 것에 대해 적절하게 잘 대처하지도 못하고 있고, 또 대처하려고 해도 역부족을 느끼게 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래도 우선 이런 문제들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번에 수녀님들한테까지 이런 주제로 연수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입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 암브로시오와 성 그레고리오, 성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부로 존경받는 분입니다. 우리들에게는 히브리어로 되어있는 구약성경과 그리스어로 되어있는 신약성경을 최초로 라틴말로 번역하였고 또 많은 성경주해서를 남겼던 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성무일도 독서기도에도 나옵니다만, 성인께서는 “성서를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 아우구스티노는 성 예로니모의 해박한 지식에 대하여 말하기를, “예로니모가 무엇을 모르는가를 일찍이 안 사람은 없었다.”라고 한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로니모 성인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격이 아주 ‘불같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라틴말로 번역한 성경을 ‘불가타(vulgata)’라고 하는데 발음이 비슷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그분은 빨리 화를 내기도 하지만 빨리 후회하는 성격이었으며 다른 사람의 결점보다 자신의 결점에 더욱 더 가혹했다고 합니다. 돌로 가슴을 치는 예로니모 성인의 초상화를 보면서 어떤 교황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당신이 그 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잘 하신 일입니다. 만일 그것이 없었다면 교회가 결코 당신을 성인으로 추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루카 9,51-56)에도 예로니모 성인 같이 불같은 성격을 가진 두 제자가 나옵니다.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를 지나가시려 하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자기들 땅을 지나가지 못하게 하자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두 제자들을 꾸짖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르코 3,17에 보면 예수님께서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셨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길을 내주지 않는다고 마을 사람들을 불살라 버리자는 제안을 한다는 것은 그들의 불같은 성격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지 단죄하거나 심판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 환호송에는 마르 10,45에 나오는 이런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기러 왔고,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이 말씀이 왜 오늘 복음의 환호송으로 선택되었는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여러분들도 다 아시겠습니다만, 세 개의 공관복음서에 다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도 역시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나오는데, 하루는 그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저희가 스승님께 청하는 것을 꼭 들어주시기 바랍니다.”하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하고 되물으시자, 그들이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하고 대답하였던 것입니다. 이게 뭡니까! 예수님한테 ‘당신 나라가 오면 저희들도 한 자리 앉혀 주십시오.’하고 청탁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 두 제자들을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을 예수님께서는 가까이 불러서 교육을 시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럴 수 있지만)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3-45)

 이런 교육과 수련과정을 거쳐서 야고보와 요한 같은 제자도 점점 순화되어 제자다운 제자가 되어갔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최근에 우리는 주님의 참된 제자의 모습을 어떤 분한테서 보았습니다. 그분은 후대에 예수님을 가장 닮은 사람 중에 한 분으로 여겨지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닮고자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프 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불러지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지난 달 우리나라와 한국천주교회를 사목방문 하시어 커다란 선물을 주시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선물을 받고 그냥 기뻐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 그 선물을 주신 분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을 쫒아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뜻은 바로 증거의 삶입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가르침이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정보와 지식과 말들이 넘쳐나는 시대입니까! 그러나 증거가 따르지 않는 가르침이나 지식은 공염불입니다. 여기서 증거란 무엇보다도 참된 신앙인으로서, 참된 주님의 제자로서, 참된 수도자로서 일관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복음화는 증거로 시작해야 합니다. 

 증거의 표본이 순교자들입니다. 그분들은 삶과 죽음으로 주님을 증거했습니다. 

 우리 교구에 순교자 관련 성지가 다섯 군데 있습니다. 이중에서 이 곳 한티가 가장 오래 되었고 정비가 잘 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능한 한 자연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꾸고 있습니다. 

이곳에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아마도 충청도와 경기도 등지에서 살던 신자들이 그 옛날, 아마도 1801년 신유대박해 때 박해를 피해 경상북도 북부지방으로 와서 교우촌을 이루며 살다가 1815년 을해박해 때 어느 날 갑자기 들어 닥친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당시 경상감영이 있던 대구로 끌려가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그 가족들과 친지들이 대구 가까이에 있는 이 한티에 와서 삶으로써 시작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곳 한티에는 현재 37구의 순교자 무덤이 있습니다. 이 중에 서태순 베드로와 조가롤로, 최발바라, 조아기 등 네 사람만 제외하고는 모두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명 순교자 무덤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묻혀계신 분들은 아직 아무도 성인이 되지 못했고, 또 복자도 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분들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병인박해 때 선참후계령에 의하여 현장에서 재판도 없이 그냥 처형을 하고는 조정에 보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것입니다. 다행히 서상돈 회장님의 삼촌인 서태순 베드로는 상주에서 재판을 받고 순교하셨기 때문에 기록이 남아있어 이번에 2차 시복대상자로 올라갔습니다. 

하여튼 하느님 보시기에 순교로 하느님을 증거한 것이 중요하지, 기록 때문에 성인이 되고 안 되고 하는 것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소임을 맡고 있고 어떤 자리에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자신의 삶으로 주님을 증거하는 일이 중요하고 그것이 하느님께 영광 드리는 일인 것입니다. 


내년이 ‘봉헌생활의 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 수도자로서 증거의 삶을 잘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어머니이시고 모범이신 성모님의 전구를 빌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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