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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종의 미 (위령미사 강론)
   2014/11/05  17:29

위령미사


2014. 11. 04. 성직자묘지


 오늘 우리는 교구 성직자묘지에서 위령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우리 교구 초대 교구장이신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과 초대 대구본당신부님이신 김보록 로베르 신부님을 비롯하여 77분의 성직자분들이 누워 계십니다. 

 올해 2월에 선종하신 김영환 베네딕토 몬시뇰께서 마지막으로 이곳에 묻혔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에 하늘나라에 가신 서영민 알렉산델 신부님은 군위에 있는 성직자묘지에 세 번째로 묻혔습니다. 최근에는 연세가 많으신 분들만이 아니라 4,50대의 젊은 신부님들이 네 분(2011년 이재희 베네딕토 신부님, 작년에 황주철 로제리오 신부님과 이형문 안토니오 신부님, 그리고 지난 4월의 서영민 신부님)이나 안타깝게도 하늘나라에 가셨기 때문에 그분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분들이 일생동안 사제로서 하느님과 교회와 신자들을 위해서 자신을 바쳤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지금은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생을 누리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만 구원은 인간의 판단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길에 달렸기에 다시 한 번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세상을 떠난 모든 연옥영혼들도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오늘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 

 

 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우리는 지난 11월 1일은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냈고 그 다음날 2일에는 ‘위령의 날’을 지냈습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이나 위령의 날이나 공통점을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11월은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고 또 장차 있을 우리의 죽음에 대해서도 묵상하는 달입니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두려움은 죽음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이 왜 두려운가?’ 하면 인간이 살고자 하는 육신의 욕망을 더 이상 펼치지 못하고 끝내야 하는 것이 죽음이며, 또한 죽음 후의 세계가 아직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우리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영원한 생명으로 옮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마태 1125-30)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28)

 그리고 신학자 칼 라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죽음은 얼마나 복된가. 그러나 그러한 죽음을 있게 한 이승의 삶은 또한 얼마나 고귀한가.”  

 이 말은 죽음도 복되고 현세의 삶도 고귀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문이며, 현세의 삶은 그런 복된 죽음을 맞이하게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인식과 믿음을 갖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11월은 교회력으로도 1년을 정리하는 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계절적으로도 11월은 1년 동안의 수확을 거두어들여서 긴 겨울과 새로운 단계의 삶을 준비하는 달입니다. 특히 고3학생들은 오는 13일에 있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봄으로써 지난 3년 동안 배우고 익힌 지식을 종합적으로 평가받는 달이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끝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유종의 미’를 잘 거두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유종의 미’를 잘 거둘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현재의 삶을 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칼 라너가 말했듯이 고귀한 이승의 삶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현재를 잘 살지 못하면 죽음 뒤의 삶도 좋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천국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내일 갑자기 행복하게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잘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좋은 옷에 좋은 집에 좋은 음식에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25-26)

 우리는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아버지께서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 앎과 우리의 믿음대로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