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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용하고 친절하며 따뜻하고 단순한 사제를 위하여 (성유축성미사 강론)
   2015/04/03  13:46

성유축성미사


2015. 04. 02. 계산주교좌성당


 교회는 해마다 성주간 목요일에 ‘성유축성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런데 그저께 일본 나가사키에 파견되어 계시는 예수성심시녀회의 한 수녀님한테서 이메일을 받았는데, 나가사키교구는 성주간 화요일에 성유축성미사를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가사키교구는 섬이 많은데, 섬에 계시는 신부님들이 성유축성미사를 위해 나가사키에 왔다가 일기가 안 좋아서 바로 섬에 있는 본당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특히 성삼일과 부활대축일을 앞두고 본당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좀 여유 있게 성주간 화요일에 당겨서 성유축성미사를 드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전통적으로 성주간 목요일 낮에는 교구의 모든 신부님들이 주교좌성당에서 성유축성미사를 주교와 함께 공동으로 집전을 하며 미사 중에 사제 수품 때 했던 서약을 다시 갱신합니다. 

 성유축성미사는 글자 그대로 일 년 동안 교회가 성무집행을 위해 사용할 기름을 축성하는 미사입니다. 그래서 이 강론이 끝나면 신부님들의 서약 갱신이 있고 이어서 축성성유와 병자성유와 예비신자성유를 축성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인공은 신부님들입니다. 각자 서품 때 축성성유로 주님의 사제로 축성이 되신 분들이, 그리고 그 성유들을 신자들의 성화를 위해 다시 사용하게 될 신부님들이 오늘의 주인공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1독서인 이사야서 61,6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주님의 사제들’이라 불리고, ‘우리 하느님의 시종들’이라 일컬어지리라.”

 그리고 제2독서인 요한 묵시록 1,6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인 루카복음 4,18-19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는’ 일을 오늘날 누가 하는 것입니까? 바로 우리 신부님들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주인공인 우리 신부님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오늘 금경축을 맞이하신 세분의 신부님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50년 전 같은 날 사제로 서품을 받고 반세기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해 오신 박원출 토마스 신부님, 유승열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그리고 이판석 요셉 신부님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지난 3월 8일부터 19일까지 ‘앗 리미나(Ad Limina Apostolorum ; 사도좌 정기방문)’를 위해 로마를 다녀왔습니다. 성 베드로 사도와 성 바오로 사도의 무덤을 참배하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알현하였습니다. 제가 2007년 4월에 주교서품을 받고 그 해 11월에 최영수 대주교님을 모시고 ‘앗 리미나’를 갔었는데 이번이 7년 4개월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에는 교구별로 알현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주교님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알현을 했습니다. 저는 2그룹에 속했는데 처음에 개별적으로 교황님과 인사를 나누고는 같이 둘러앉아 자유롭게 질문과 대답으로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우리 그룹에서 어느 주교님께서 질문하기를, 지난 여름 교황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평신도와 수도자와 주교들한테는 말씀을 주셨는데 사제들한테는 특별한 말씀을 주시지 않았기에 이번에 한국 사제들을 위해 한 말씀을 주시면 좋겠다는 청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교황님께서 많은 말씀을 하셨지만 여기서는 두 가지 말씀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교황님께서는 직접 본 것은 아니고 당신도 들은 이야기라면서, 한국의 신부님들이 사제가 되자마자 무슨 차를 구입할까를 고민하고 안락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신부님들마다 생활하는 모습과 방식이 다를 수 있지만, 사제가 단순하고 검소하게, 그리고 절제하며 살아야 한다는 정신은 변함없는 정신일 것입니다. 사제는 주님의 제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2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교황으로 선출 되신 후 추기경님들과 가진 첫 미사 강론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 주된 내용은 ‘세속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교회는 인심 좋은 NGO단체에 불과하다.’는 말씀을 하셨고, 그리고 ‘십자가 없이 걷고, 십자가 없이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면 우리는 예수의 제자가 아닌 세속적인 존재일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사제, 주교, 추기경, 교황일 수는 있어도 주님의 제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실생활에 있어서는 그 십자가를 멀리하고자 합니다. 말로는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주교님들의 알현이 다 끝나는 날 오후 4시에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한국 순교자 시복감사미사가 있었습니다. 미사 시작하기 30분 전에 교황님께서 그 자리에 오셔서 한국 신자들의 손을 잡아주시고 난 후 한 말씀 하셨습니다. 그 중에 ‘종교적 Well-being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종교적 Well-being’,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마음의 평화만을 쫓는 종교가 아닐까요? 개인주의에 빠진 종교, 십자가 없는 종교가 아닐까요? 

 교황님께서는 두 번째로, 한국의 신부님들이 신자들 위에 군림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시면서, 한국 교회는 평신도가 먼저 와서 세운 교회이고 사제는 나중에 도착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신부님들마다 사목하시는 스타일이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사제가 신자들을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형제처럼, 때로는 아버지처럼 대하며 그들에게 다가가고 그들과 함께 사랑과 친교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원칙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당에 가보면 많은 경우에 분위기가 얼마나 냉랭하고 딱딱한지, 얼마나 재미가 없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는 데는 본당신부님의 책임이 절반 이상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의 123페이지를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18년 만에 돌아온 가톨릭에서 나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신부님 만나기는 하느님 만나기보다 힘들었고 가끔 만나 신부님들은 의외로 많은 상처를 주셨다. 나는 그냥 오랜 냉담을 끝내고 싶어 하는 평범한 아줌마로 그분들에게 다가갔다. 실제로 하느님 앞에 이름과 직업이 중요할까 싶었고 그냥 회개하는 죄인이라 생각해서 그랬다. 그리고 많이 무시당했고 냉랭한 대접을 받았다. 솔직히 말해 귀찮아하시는 것도 보았다. 참, 씁쓸한 기억들이었다.”

 그런데 이 글이 실린 그 장의 제목은 이와는 정반대로 ‘(그는) 조용하고 친절하며 따뜻했고 그리고 단순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가 하면 한국 신부님은 아니고 독일 신부님이신데 성 베네딕도회의 안셀름 그륀 신부님이십니다. 

 우리 신부님들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조용하고 친절하며 따뜻했고 그리고 단순했다.’

 결론적으로 교황님께서 사제들에 대하여 하신 모든 말씀의 키워드는 ‘가까이 가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고 신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라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안식일 다음날 이른 아침에 예수님의 시신에 발라드리려고 기름을 들고 무덤을 향하여 달려갔던 것처럼, 우리도 오늘 축성한 예비신자 기름과 병자들을 위한 기름과 축성 기름을 들고 사람들에게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도 막달라 마리아처럼 부활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을 것이며, 살아계신 주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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