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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萬世師表 (가톨릭 교직자의 날 미사 강론)
   2015/06/01  12:2

가톨릭 교직자의 날


2015. 05. 30. 대구가톨릭대학교


 오늘은 우리 교구 학교 재단이 마련한 ‘가톨릭 교직자의 날’입니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부터 내일까지는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정한 ‘가톨릭 교육주간’입니다. 

 오늘 ‘가톨릭 교직자의 날’에 선목학원 재단의 학교뿐만 아니라 해은학원 재단의 오천중고등학교 선생님들도 참석하셨고, 그리고 교구 유지재단 소속의 산자연중학교의 선생님들도 참석하셨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체육행사가 있다고 하는데 단합과 친교를 나누는 즐거운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가톨릭 교직자의 날’을 맞이하여 우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맡은 바 소임에 열과 성을 다하시는 여러분들에게 축하와 아울러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계시기에, 그리고 여러분들의 노고와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 교구의 모든 학교들이 오늘날과 같이 발전할 수 있었으며, 수많은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훌륭한 인재로 사회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가 받은 소명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한 번 인식하고 그 소명에 충실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면서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일이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가장 소중한 일을 하나 꼽으라면 그것은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가르치는 일일 것입니다. 이것보다 소중한 일이 또 있겠습니까? 이 일을 누가 합니까? 여러분들이 하시는 것입니다. 선생님들이 하시고 성직자들이 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직자도 성직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위대하고 소중한 직분에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며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가톨릭 교직자로서 그 역할을 다 해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육 현실은 참으로 복잡다단하고 만만치가 않습니다. 우리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그리고 장관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바뀌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육의 무한경쟁 체제 속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학교 교훈은 사랑과 봉사, 양심 같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들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학업에 거의 매달리는 현실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상과 현실의 딜레마 속에서 갈등하기도 하고 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우리의 기준을 잡아주실 분이 필요합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참 스승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어떻게 사람을 대하셨고 어떻게 가르치셨고 어떻게 당신 삶을 사셨는지가 우리가 따라야 표본인 것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전인적인 교육자이십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랍비’, 즉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분은 말로만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말과 행동과 모범으로 가르치셨던 훌륭한 선생님이셨습니다. 

 

오늘 복음(요한 10,11-18)에서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착한 목자의 세 가지 특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 놓습니다. 목자는 밤낮없이 양들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목자는 필요하면 양을 위해서 자기 생명까지 내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와 삯꾼을 대조시킵니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삯꾼이 양들에게 관심이 없으면 어디에 관심이 있습니까? 삯에 관심이 있습니다. 돈, 봉급, 명예, 인기, 자기편의 등에 관심이 있습니다. 정한 시간에만 일할 뿐이고, 자기 손해 볼 일은 절대 안 합니다.

오늘날 목자답지 않은 목자, 삯꾼 때문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것은 교육계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에 목자다운 목자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올해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교육주간 담화문 제목이 ‘가정은 최초의 학교이며 부모는 최초의 교육자’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는 최초의 교육자이며 가장 중요한 목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에 맡겨놓으면 교육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어떤 목자입니까? 착한 목자입니까? 삯꾼입니까? 

둘째로, 착한 목자는 양들 하나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고 했습니다.

8년 전에 제가 보좌주교로 임명을 받아 마산 가르멜수도원으로 피정을 떠날 때 이영동 신부님이 ‘양치기의 리더십’이라는 책을 저한테 주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 책에도 나오는 이야깁니다만, 목자의 첫 번째 임무는 양들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양들의 됨됨이, 즉 그들의 장점과 단점, 의욕, 태도, 능력, 그들의 희망과 꿈 등을 파악하고 있어야 그들을 잘 지도하고 잘 이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목자들이 양들의 상태, 양들의 적성, 양들의 원의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지식만 주입시키려고 하고 자기 방식대로만 끌어가려고 합니다. 이런 목자는 삯꾼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삯꾼들은 양들을 잘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사보다 제물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착한 목자는 우리 밖에 있는 양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이 1년에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대구 경북만 해도 수천 명이 된다고 합니다. 학교에 가지 않는 학생이 나중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나라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아직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종교단체나 뜻있는 사람들이 그 아이들을 거두어 교육하려고 하고 있습니다만 어려움이 참으로 많습니다. 


지난 5월 중순에 중국 산동성에 있는 한인본당 두 군데를 방문하고 견진성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산동성에 간 김에 1박2일로 공자님의 고향인 곡부를 다녀왔습니다. 옛날 춘추시대에 산동성은 노나라이고 곡부는 노나라의 수도였다고 합니다. 곡부에 가면 공자님의 묘만 있는 줄 알았는데 孔廟, 孔府, 孔林, 이렇게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공묘는 공자님을 모신 사당이고, 공부는 공자와 그 직계 후손들이 살았던 마을이며, 공림은 공자와 그 후손들의 묘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공묘의 중앙 현판에 ‘萬世師表(만세사표)’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 선생님들이 자라는 세대에게 사표가 되시고 더 나아가 ‘만세사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