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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도하고 일하라 (문세실리아 자매 장례미사 강론)
   2015/08/05  10:25

문세실리아 자매 장례미사


2015. 07. 31.(금) 금호성당


 문남녀 세실리아 자매께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살아생전에 그렇게도 그리워하고 가고 싶어 했던 하느님 아버지께 가셨습니다. 


 제가 문세실리아 서그레고리오 부부를 안 지는 30년이 넘었습니다. 1983년도에 제가 군종신부로 입대해서 첫 부임지가 강원도 인제 원통에 있는 12사단이었는데 서그레고리오씨가 그 사단에서 정훈장교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신앙적으로도 열심할 뿐만 아니라 참으로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1988년에 군종신부를 마치고 포항 덕수성당에서 사목하고 있었습니다. 그레고리오씨도 그때 쯤 소령으로서 제대를 하고 원주 역 앞에서 식당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식당 이름이 ‘본전식당’이었습니다. ‘본전만 하겠다.’, ‘이윤을 남기지 않겠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사람들한테는 식사 값을 제대로 받지도 않고 식사를 제공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제가 사목하고 있던 덕수성당의 사무장이 갑자기 다른 일을 하겠다며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장을 찾고 있던 차에 그레고리오씨가 생각났던 것입니다. 정훈장교를 했으니 사무일을 잘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원주로 전화를 해서 포항으로 내려올 수 있으면 내려와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부부는 포항 덕수성당 교육관에서 살게 되었고, 얼마 후 제 식간 자매가 그만두게 되었는데 세실리아씨가 제 식간 일까지 맡아서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얼마 후 저는 안식년을 받아 미국 교포사목을 떠나게 되었고 2년 후 귀국하였을 때는 이 부부는 강원도 정선성당에서 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전에도 세실리아씨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정선성당에서는 아예 여러 사람들이 그곳에 와서 같이 살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압니다. 


 본격적으로 이 공동체가 시작한 것은 이 부부가 원주교구의 신현봉 신부님께서 은퇴를 하시고 용소막에 거주하시게 되었는데 신신부님을 모시고 그곳에 살게 되면서부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곳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식구도 많아지고 마침 영천 대창면 신광리에 집이 한 채 생기면서 두 개의 공동체를 지금까지 유지하여 왔던 것입니다. 


 이 공동체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언젠가 세실리아씨한테 물어본 적이 있는데,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왜 공동체의 이름을 정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말 많은 세상에 엉뚱한 말이 안 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을 짓지 않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일, 선한 일을 하면서도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곧잘 받는 세상이 오늘날의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공동체를 그냥 ‘기도부대’, 혹은 ‘호미부대’라고 불렀습니다. 왜 그렇게 불렀는지는 아시는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베네딕토 성인께서 ‘기도하고 일하라.’고 하셨는데 이는 오늘날 모든 수도 규칙의 대명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공동체는 수도 공동체가 아니면서도 성인의 이 말씀을 가장 철저하게 실천하고 있는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분들은 새벽 2시 반에 일어나서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아침을 해먹고는 다들 모자를 덮어쓰고 호미 한 자루씩을 들고는 일하러 나갑니다. 그리고 저녁에 돌아와서는 저녁을 해먹고 저녁기도를 한 후 잠자리에 들고 다시 이튼 날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고 일하러 나가고 하는 것입니다. 원주교구의 베론성지를 비롯하여 우리 교구의 한티성지에 이르기까지 교구의 성지 중에 호미부대의 손길이 안 간 데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하여튼 이렇게 육체적으로 힘든 공동체에, 그리고 제대로 된 이름도 하나 없는 이 공동체에 왜 사람들이 모여들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때문이요 문세실리아씨 때문이었습니다.


 문세실리아씨는 많이 배운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카리스마가 있었고 말씀에 힘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말씀대로 살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믿음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세실리아씨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확신으로 살았고 그 확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심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던 것입니다. 데레사 성녀처럼 하느님만으로 만족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말과 행동에는 힘이 있었고 권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께 대한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사람한테 사람들은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자매들뿐만 아니라 여러 신부님, 수사님들도 이 공동체에 와서 일주일씩, 혹은 몇 달씩 같이 기도하고 일하다가 가곤 하였습니다. 


 유승열 신부님께서 어제 병원 영안실에서 입관예절을 마치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문세실리아를 부러워했다.”고. 그 말씀은, 신부님께서는 성직자이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데 세실리아씨는 그렇게 살기 때문에 부러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이냐?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자가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인 것이다.”

 말씀대로 사는 것,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문세실리아씨가 없는 공동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모든 형제자매들이 세실리아씨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늘 생각하고 산다면 잘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을 떠난 세실리아씨를 위해 장례미사를 드리고 있지만, 사실은 세실리아씨가 이미 하느님 나라에 가서 지상에 남아있는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세실리아씨의 영복을 위해 기도하지만 세실리아씨가 우리들에게 남긴 그 모범과 정신을 우리도 살 수 있도록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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