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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버지가 되라 (2017년 사제 서품미사 강론)
   2017/01/20  16:21

사제서품미사

 

2017. 01. 18. 주교좌범어대성당

 

작년까지는 남산동 교구청에 있는 성김대건기념관에서 부제서품식과 사제서품식이 있었는데 지난 5월에 범어대성당 봉헌식을 가진 후 처음으로 이곳에서 사제서품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난 7월에는 이곳에서 주교서품식이 있었고, 그리고 어제는 이곳에서 부제서품식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열네 명의 부제들이 사제품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교구에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오늘 사제서품식에는 일본 나가사키대교구의 요셉 타카미 대주교님께서 참석하셨습니다. 우리 교구에서 두 명의 신학생을 일본 신학교에 파견하여 공부를 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들이 사제가 되면 앞으로 일정 기간 동안 한 사람은 나가사키대교구에서, 또 한 사람은 후쿠오카교구에서 사목을 할 것입니다. 그 두 신학생이 어제 이 자리에서 다른 신학생들과 함께 부제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가사키의 타카미 대주교님과 후쿠오카의 미야하라 주교님께서 어제 부제서품미사에 참석하셨습니다. 타카미 대주교님은 오늘 오후 2시 비행기로 떠나셔야 하는데도 어제에 이어서 오늘 이 사제서품미사에도 참석하셨습니다. 환영과 감사의 박수를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구가 자매결연을 하고 있는 교구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대교구와 대만의 타이중교구입니다. 
잘츠부르크대교구는 1968년에 교구 시노드를 개최하고 앞으로 교구가 해야 할 과업의 하나로 세계교회에 대한 연대감과 책임감을 구체화시키는 일을 설정하였다고 합니다. 그 방법의 하나로 세계교회를 위한 ‘교구위원회(DKWE)’를 구성하고 각 대륙에서 한 나라의 교회를 선정하여 자매결연을 하였습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의 저희 교구와 자매결연을 하였고, 아프리카에서는 지난 100주년 대성당 봉헌식 때 오셨던 콩고의 보쿤고 교구이며, 아메리카에서는 볼리비아의 성 이냐시오 교구와 자매결연을 하였던 것입니다. 잘츠부르크대교구는 이들 교구들과 많은 교류와 지원을 함으로써 세계교회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습니다. 이를 볼 때 잘츠부르크대교구는 일찍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실천한, 열린 교회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 잘츠부르크에서 2주 전에 저희 교구의 재유럽사제모임이 있어서 제가 다녀왔습니다. 유럽에 있는 저희 교구 신부님들은 대부분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하는 신부님들이지만 교포사목을 하는 신부님이 세 분 계시고, 현지인 선교를 하는 신부님도 세 분이 계십니다. 
사제모임 기간 중에 자매교구인 잘츠부르크대교구와의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선교하는 세 분의 신부님들의 발표가 있었는데 그 중에 카자흐스탄에서 선교하고 있는 이수환(바오로 미끼) 신부님이 선교에 대해서 한 말이 특별히 기억에 남습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선교란 그 나라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이나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부님의 말처럼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가 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 큰 관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마태 20, 25-28)은 사제서품 때마다 자주 듣게 되는 말씀입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는 백성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백성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면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섬기고 백성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코린토 2서 4장 5절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들은 백성들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선포하려고 하고, 백성의 종이 아니라 백성의 주인이 되려고 한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사제가 되려고 합니까? 세상 사람들이 하나의 직업을 갖듯이 삶의 한 방편으로 성직자가 되려고 합니까?
루카 복음 7,24-25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자들은 왕궁에 있다.”
사제가 되려면 삶의 방식도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을 따라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부제님들이 주교와 선배 사제들의 안수를 받고 도유를 받아 사제가 되는 뜻은 이제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아니 하고 하느님과 백성을 위해 살라는 뜻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지난 해 로마에서 있었던 어느 사제서품식에서 말씀하시기를, ‘사제들이 관리자가 되지 말고 아버지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관리자입니까? 아버지입니까? 아버지에 대한 느낌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만, 여기에서 아버지는 자비로우신 아버지, 인자하신 아버지, 그러면서 책임과 소임을 다 하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 관리자의 모습으로 살 때가 많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사목은 사목계획이 아니다.’고 하셨습니다. 대화요, 친교요, 섬김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팎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계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사목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재발견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방식을 따르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있었고 그 당연한 것을 우리가 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랬던 것을 교황님께서 솔직하게 지적을 하시고 당신이 몸소 그대로 사시니까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 신부님들도 교황님처럼 복음을 그대로 사는 사제가 되고, 우리 신자분들도 복음을 그대로 사는 교우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2코린토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