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교구장/보좌주교 > 교구장 말씀
제목 의연하고 당당한 신앙 (성 이윤일 요한 순교 150주년 기념미사 강론)
   2017/01/23  22:14

성 이윤일 요한 순교 150주년 기념미사


2017 01 21 주교좌계산성당

 

지난해는 병인순교 150주년이 되는 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순교자와 관련한 행사가 유난히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작년 1월부터 ‘관덕정순교기념관 개관 25주년’과 ‘성 이윤일 요한제 25주년’ 기념행사가 있었습니다. 기념음악회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있었고, 기념미사가 이곳 계산성당에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9월 ‘순교자 성월’에는 관덕정과 복자성당에서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미사’가 있었고 경북 칠곡에서는 ‘한티 가는 길’ 개통식과 ‘한티 성지 도보 순례’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에는 신나무골성지에서 프랑스 순례단과 함께 ‘병인순교 150주년 미사’를 드렸고, 지난 12월 19일에는 이곳 계산성당에서 ‘을해박해 순교 150주년 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우리 교구 제2주보이신 ‘성 이윤일 요한 순교 15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이윤일 요한 성인께서는 충청도 내포지방 홍주(지금의 홍성)에서 태어나 살다가 박해를 피해서 경상도 상주 갈골에 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부친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자 성인의 처가 식구들(정해박해 때 순교자인 복자 박경화 바오로와 그의 아들 복자 박사의 안드레아의 후손들)이 많이 살던 문경 여우목(호항리)에 와서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공소회장으로서 열심히 전교를 하고 신자들을 가르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1866년 병인년 11월 18일에 갑자기 들이닥친 포졸들에게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체포되어 문경 관아에 끌려갔다가 다시 상주 진영으로 가서 심문과 고초를 당하였고 또 다시 대구의 경상감영으로 압송되어 감사로부터 심문과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결국 1867년 1월 21일 관덕정 언덕에서 문경 한실공소의 김예기 회장과 김인기 형제와 함께 참수치명하신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죄인이 죽기 전에 음식상을 한 상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예기 김인기 형제들이 먹지 않고 울자 성인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주께서 먹으라고 주신 음식을 먹지 아니하고 우시는 것은 무슨 연고요?”하며 기쁘게 먹고 기쁘게 가자고 권면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윤일 요한 성인께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엽전 다섯 냥을 희광이에게 주면서 “여보게. 이것 받아 주게. 저승에서는 이런 것이 필요 없다네. 자네나 나나 고생하지 않게 한 칼에 내 목을 쳐주게.”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죽는 순간까지 의연하고 당당하신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성인의 나이가 52세였는데 오늘이 바로 돌아가신 지 150년이 되는 그날입니다. 
성인의 유해는 처음에는 관덕정 형장 근처에 임시로 묻혔다고 합니다. 그 후 후손들이 비산동 날뫼 뒷산으로 이장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후손들이 경기도 용인 묵리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1912년에 그리로 다시 모셔갔다고 합니다. 성인께서 60여 년 동안 묻혀 계셨던 그 묵리를 7,8년 전에 관덕정 순례단과 함께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묘소가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성인의 유해는 그 후 다시 1976년 6월 24일부터는 경기도 안성 미리내 성지의 순교자 묘역에 안장되어 있었습니다.  
그 후 10년 후인 1986년 12월 20일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님께서는 수원교구 김남수 주교님의 승인을 얻어 성인의 유해를 미리내 성지에서 우리 교구로 모시고 오셨습니다. 대구에서 순교하신 후 120년 만에 다시 대구로 모시게 된 것입니다. 
성인의 유해는 교구청 경당에 한 달 동안 임시 안치하였습니다. 한 달 후인 1987년 1월 21일에 성김대건기념관에서 ‘이윤일 요한 성인 순교 12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하면서 성인을 교구 ‘제2주보성인’으로 선포하였습니다. 그날 이대주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본 교구는 교구설정 당시 초대 교구장이었던 드망즈 주교께서 루르드의 성모님을 교구의 수호자로 모시고 성모님의 전구로 무수한 은혜를 받아왔습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오늘 우리의 신앙을 더욱 굳세게 하고 장한 순교정신을 이어받게 하시고자 이윤일 요한 성인을 우리 교구의 제2 수호자로 모시고자 하는 열망을 우리 마음에 불러일으켜 주셨습니다. 이에 본 주교는 이윤일 성인 치명 120주년을 기념하여 미사를 봉헌하고 성인의 유해를 성모당에 봉안하는 이 뜻깊은 자리에서 사제단과 더불어 전 교구민과 한마음이 되어 이 요한 윤일 성인을 본 교구 제2 수호자로 모실 것을 선포합니다.”  
그 미사가 끝난 후 성인의 유해를 성모당 제대 밑에 봉안하였습니다. 그리고 4년 후인 1991년 1월 20일 관덕정 순교기념관을 준공하면서 관덕정 성당 제대 밑에 안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윤일 요한 성인께서는 살아계실 때 그렇게 많이 이사를 다니시더니 돌아가신 후에도 이렇게 많이 이사를 다니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들 곁으로 오신 것입니다. 성인을 보면 참으로 의연하고 당당한 참 신앙인의 모범을 보는 듯합니다. 

 

사실 박해시대 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순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수많은 배교자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적지 않은 신앙의 선조들이 내면으로는 깊은 고뇌와 갈등과 번민 속에서, 그리고 온 몸이 떨리는 전율과 공포를 느끼면서도 용감히 순교함으로써 하느님을 증언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2독서(로마 8,31-39)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35)
오늘은 ‘성녀 아네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이기도 합니다만, 아네스 성녀나 이윤일 요한 성인처럼 많은 순교자들이 그렇게 당당하게, 그리고 기쁘게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주 하느님과 영원한 삶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희망이 그들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순교자들의 이런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제1독서인 지혜서(3,1-9) 말씀을 마지막으로 묵상합시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2-5,9)

 

“성 이윤일 요한과 한국의 순교자들이여,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