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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머니 치마폭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 금경축 축사)
   2015/09/16  14:20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 금경축 축사


2015. 09. 14. 계산주교좌성당


 먼저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님의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교구장에서 은퇴하신 지가 8년이 지났습니다만 이렇게 건강하신 모습으로 우리들 곁에 계셔 주시는 것만으로 은혜로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대주교님께 건강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대주교님께서는 원래 금경축 행사를 하시지 않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제가 하셔야 한다고 몇 번 건의를 드려서 성사가 되었는데, 행사를 하더라도 최소한 간단하게 하면 좋겠다고 하셔서 이렇게 조촐하게나마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국의 주교님들에게도 연락을 드리지 않았습니다만 뜻밖에도 서울대교구의 총대리이신 조규만 주교님께서 오늘 미사에 참석하셔서 축하를 해주시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까 이대주교님께서 강론에서 당신이 교구를 위해서 한 일이 별로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이대주교님께서 이루신 업적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구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져놓으셨던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그만 하고 좀 부드러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1990년 12월 23일 이대주교님께서는 사제서품 25주년 은경축을 맞이하셨던 그날, ‘일기’라는 제목의 시집을 비매품으로 내신 적이 있습니다. 그 시집의 후반부에 ‘어머니’라는 제목의 시 여덟 편이 실려 있습니다. 그 중의 한 편을 읽어 드릴까 합니다.

 

어머니(7)


바람 불던 날

하필이며 엄마 따라 할머니 보고 돌아오는 길에

바람이 불어서, 언덕을 넘을 때는

엄마 치마폭 속에 숨어서 걸어야 했다.


사실이야, 그런 바람 분다고

아무의 치맛자락을 덮어써야 할까마는 

엄마 손잡고 걷는 아이는 

치맛자락 속에 안기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은

세상 바람이 거친 것을 느껴도 

어머니 치마폭 속에 들 수 없고

노쇠한 어머니의 언 손을 잡고, 그때의 따사로움을

불러보는 것이다. 나에게 전해준 그 체온을 돌려드리고 

싶을 뿐이다.


 오늘은 이대주교님께서 꼭 80년 전에 태어나셨던 바로 그날입니다. 80년 전 오늘 당신을 이 세상에 낳아주셨던 그 어머님을, 25년 전 노쇠한 어머니의 언 손을 잡고 당신에게 전해준 체온을 돌려드리고 싶었던,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그 어머님을 대주교님께서는 오늘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오늘 만 80세의 생신과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대주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어머니의 치마폭과도 같은 분이셨습니다. 늘 건강하셔서 오래도록 저희들 곁에 계셔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