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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갔느냐? (사제총회 위령미사 강론)
   2015/11/04  9:25

사제총회 위령미사


2015. 11. 3. 성직자묘지


 우리 교구는 해마다 11월 첫째 화요일 오전에 사제총회에 앞서서 교구 성직자 묘지에서 위령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이 성직자 묘지에는 초대 교구장이신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을 비롯하여 78분의 성직자분들이 묻혀 계십니다. 올해는 지난 4월 19일에 선종하신 이종흥 그리산도 몬시뇰께서 새로 이곳에 묻히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성직자 묘지에서 위령미사를 드리면서 이 분들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도록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이미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생을 누리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만, 구원은 인간의 판단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길에 달렸기에 다시 한 번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세상을 떠난 우리 부모 형제 친지들과 모든 연옥영혼들도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 

 

 어제는 ‘위령의 날’이었습니다. 저는 어제 오전에 군위묘원에 가서 새로 단장한 군위 성직자 묘지에서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며칠 간 날씨가 매우 추웠었는데 다행히 날씨가 좋아져서 그런지 한 700여 분들이 왔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사를 마치고 묘지를 둘러보고 있는데, 한 50대로 되어 보이는 한 자매님이 가까이 오더니 눈물을 글썽이면서 하시는 말씀이 남편이 돌아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제 돌아가셨느냐 물으니까 지난 8월에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남편이 작년에 어느 성당 축성식 때 미사해설을 했던 사람이라고 하면서 주교님도 그 때 보셨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당에서 미사 해설도 하면서 그렇게 건강하게 보였던 사람이 어떻게 1년여 만에 돌아갈 수 있는가 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으며 그 자매님을 위로해 주고는 산에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안타까운 죽음들이 많습니다. 군위성직자묘지에는 세 분의 신부님들이 묻혀계십니다. 한 분은 은퇴 후에 돌아가셨지만, 다른 한 신부님은 52세에 돌아가셨고 또 다른 한 신부님은 48세에 돌아가셨습니다. 48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서영민 신부님의 모친도 어제 군위묘지에서 만났습니다.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심정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이보다 더 절망적이고 슬픈 일은 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제 이런 일들을 접하면서 저는 예수님은 연세가 몇 세일 때 돌아가셨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학자들 간에 논란이 있습니다만 대체로 37-8세로 보고 있습니다. 하여튼 예수님은 30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야말로 꽃다운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그것도 그냥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몇 년 전에 ‘Passion of Christ(그리스도의 수난)’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수난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참으로 참혹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아들의 수난과 죽음을 몇 발치서 지켜보시는 성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아드님의 고통을 당신 안에 다 간직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성모님도 참으로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과 성모님이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가시는 구나’ 하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부활신앙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갔느냐? 죽음아, 네 독침은 어디 있느냐?’ 죽음의 독침은 죄요,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합시다.”(1고린 15,55-57)

 이렇게 볼 때 사람이 일찍 돌아가시든, 늦게 돌아가시든 죽음 그 자체를 너무 슬퍼만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영원한 삶으로 옮아가는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하느님의 생명에, 하느님의 영원성에의 참여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의 참여는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잘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답게 사는 것’입니다. 사제는 사제답게, 주교는 주교답게 사는 것입니다. 신자는 신자답게 사는 것입니다. 사제는 사제로서 사제답게 자신의 본분을 다 하는 것입니다. 

 이 강론 후에 각 대리구 대표 신부님들이 나와서 ‘사제답게 살겠습니다.’라는 선언문을 낭독할 것입니다. 지난 9월 19일에 한티성지에서 교구 평신도 단체 대표들이 평신도답게 살겠다고 다짐을 하였고 그 다음날에는 각 본당에서도 했었던 것으로 압니다만 우리 신부님들도 예외 없이 ‘사제답게 살겠습니다.’ 하고 오늘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일회성으로 그치는 이벤트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살도록 노력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들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사제답게 살려고 노력하시다가 돌아가신 선배 사제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영원한 행복을 위해 기도하면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본분을 다 하고 그야말로 ‘답게 살기’로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