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그룹웨어
Home > 교구장/보좌주교 > 교구장 말씀
제목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김종선 즈카리야 종신서원 미사 강론)
   2015/12/22  17:28

김종선 즈카리야 종신서원미사


2015. 12. 19. 마산 가르멜수도원

 

 먼저 오늘 ‘맨발의 가르멜회’ 수도자로 종신서원을 발하는 김종선 예수의 즈카리야 형제에게 축하를 드리며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그리고 귀한 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부모님께 감사를 드리며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제가 2007년 4월에 주교서품을 앞두고 이곳 마산 가르멜수도원에 와서 8일간 피정을 하였었는데, 피정을 마치던 날 아침미사를 집전한 후 말하기를, 매년 한 번씩 이곳에 들리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 1년에 한 번씩 이곳에 들려서 하룻밤을 묵고 가곤 하였습니다. 못 들린 해도 있었습니다만. 
 2009년 8월 31일에 제 전임 교구장이셨던 최영수 요한 대주교님께서 선종하셨는데, 장례를 치루고 난 후 며칠 후에 수도원을 들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날 저녁식사 때 수사님들과 신부님들이 최대주교님을 추모하고 저를 위로하는 노래를 두 곡 불러주셨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중에 한 곡이 예수의 데레사 수녀님의 ‘아무 것도 너를’이란 노래였습니다. 그 노래와 가사가 좋아서 그 후 저는 자주 그 노래를 흥얼거리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12월 14일 ‘십자가의 성 요한 축일’에 들렸었는데, 피정의 집 강당에서 수사님들의 연극을 가르멜 재속회원들과 함께 아주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가 아마 즈카리야 형제가 신학교 1학년을 마치고 첫 수련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었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김종선 즈카리야 형제의 종신서원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오랜만에 방문하였습니다. 제가 이 미사를 집전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마산교구의 안명옥 주교님과 예로니모 관구장 신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올해 ‘봉헌생활의 해’를 마무리 하는 시점에, 그리고 ‘자비의 특별 희년’을 시작하는 시점에 종신서원을 하게 되는 것은 참으로 의미가 깊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2015년 올해는 ‘맨발의 가르멜회’로서는 특별한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맨발의 가르멜회’의 창립자이신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탄생 500주년을 맞이하였고, 또 소화 데레사 성녀의 부모인 루이 마르땡과 젤리 마르땡 부부가 시성되었습니다. 부부가 동시에 성인이 된 일은 역사상 처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경사스러운 해에 우리는 ‘봉헌생활의 해’를 보내고 있고 이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즈카리야 형제가 우리 주 하느님과 형제자매들 앞에서 종신서원을 발하고 있습니다. 즈카리야 형제는 ‘그대를 위해서 태어난 몸,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라는 데레사 성녀의 말씀을 자신의 서원 모토로 삼았습니다. 이 말씀은 봉헌이 무엇인지를 잘 드러내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봉헌은 하느님께 자신을 바친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다 바치는 것이기에 자신을 위해 남겨 놓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완전한 봉헌은 오로지 그분을 위해 자신을 다 바치는, 그야말로 완전한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 예언자처럼, 바오로 사도처럼, 그리고 데레사 성녀처럼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부단한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로 봉독한 열왕기 상권 19장 말씀은 엘리야 예언자가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존재를 증거하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치열하게 살았던 일생의 클라이맥스 부분을 전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가르멜 산에서 수백 명의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을 하고 그들을 이김으로써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에 화가 난 이제벨 왕후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자 엘리야는 사십 주야를 걸어서 호렙 산으로 피신하였는데, 거기서 하느님을 만나는 이야기가 오늘 제1독서 내용인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대사가 거의 없었고 대신에 자막이 몇 번 나왔었습니다. 제 기억에 남는 말씀은 ‘주께서 저를 불러주셨으니 제가 지금 여기 있나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바로 수도성소의 근본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그저 ‘주께서 저를 불러주셨으니 제가 지금 여기 있나이다.’ 할 뿐입니다. 그리고 오늘 제1독서로 읽었던 열왕기 상권 19,11-12 말씀이 자막으로 나왔었습니다.
 “바로 그때에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일어난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침묵 가운데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시종일관 침묵으로 이어지는 다큐멘터리영화였습니다. 감독이 왜 이 성경구절을 자막으로 넣었는지를 알 것 같았습니다. 
 김종선 즈카리야 형제는 조금 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을 더욱 완전히 섬기기 위하여 죽을 때까지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맨발 형제들의 수도회에서 변함없이 살 수 있기를 청합니다.” 
 이렇게 청하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즈카리야 형제는 알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완전한 봉헌생활, 거룩한 축성생활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수도생활 쇄신에 관한 교령의 제목처럼 ‘완전한 사랑’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오늘 제2독서로 봉독한 로마서 12장 1절에 나오듯이, ‘자신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는 것’이며, 오늘 복음으로 봉독한 요한복음 15장 13절에 나오듯이, ‘벗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종신서원을 발하는 즈카리야 형제는 그렇게 살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으로 수도생활에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는 즈카리야 형제가 오늘 서원한 대로 잘 살 수 있도록 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즈카리야 형제에게 큰 은총 내려주시고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서 지켜주시고 도와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