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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크리스마스의 기적 (예수성탄대축일 전야 미사 강론)
   2015/12/28  15:53

예수성탄대축일 전야 미사


2015. 12. 24. 율곡성당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야 9,1)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이사야 9,5)
 오늘 들은 제1독서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Merry Christmas!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탄생하셨습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사랑과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과 이 나라에 충만하기를 빕니다. 
 율곡성당이 지난 1월 말에 설립이 되었는데 오늘 성탄절을 맞이하여 처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황영삼 신부님이 첫 본당신부로 부임해서 신자들을 모우고 또 완전한 성당은 아니지만 새로운 성당을 지을 때까지 사용할 성당을 지어서 오늘 첫 성탄미사를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본당신부님과 모든 교우들의 수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잘 해 오셨지만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이 신설성당이 자리를 잘 잡을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하시고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율곡성당은 김천혁신도시에 설립된 성당입니다. ‘율곡’이라는 이름이 ‘밤나무 골짜기’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성당 이름이 율곡 이이 선생님의 이름과 같기 때문에 장차 그 이름에 걸맞은 성당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다음 달 말에는 대구혁신도시에도 새로운 본당이 설립될 예정입니다.
 
 오늘 복음(루카 2,1-14)말씀은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등록을 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갔다가 거기서 예수님을 낳으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합니다. 구유는 가축의 여물통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시는데 누우실 자리가 없어 그런 곳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자신을 낮추시고 이것보다 더한 겸손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의 성탄은 하느님의 가장 큰 자비의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으로 오셨다는 것, 그것도 가장 가난한 자로 오셨다는 것, 참으로 큰 자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지난 12월 8일부터 내년 11월 20일까지를 ‘자비의 특별 희년’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선포 칙서 제목이 ‘자비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칙서 제1항 첫줄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의 얼굴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행동, 당신의 온 인격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셨습니다.(1항 참조)

 저는 지난 9월 말경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되었던 세계가정대회에 참석한 후 뉴욕에 있는 어느 한인성당을 방문하기 위해 뉴욕으로 가는 길에 뉴저지의 뉴튼이라는 시골에 들렸습니다. 그곳에는 왜관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는 세인트 폴 수도원이 있습니다. 그곳에 들린 이유는 왜관 수도원에서 간 신부님들과 수사님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궁금하였지만 무엇보다 그 수도원의 묘지에 묻혀 계시는 어느 수사님을 찾아뵙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수사님이 바로 흥남철수작전 마지막 날 피난민 14000명을 실고 흥남부두를 떠났던 미국 상선의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입니다. 
 ‘흥남철수작전’, 아시지요? 영화 ‘국제시장’의 시작이 흥남철수작전 마지막 날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노래도 있지요?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흥남철수작전은 국군 제1군단과 미군 제10군단 장병들이 밀려오는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인해 장진호 전투에서 패배를 하고 1950년 12월 15일부터 12월 24일까지 열흘간 10만 명의 병력과 장비를 동해상으로 철수시키는 작전이었습니다. 이때 수많은 피난민들도 육로를 통해 남쪽으로 피난했지만 미쳐 피난가지 못했던 사람들이 흥남부두를 통해 배로 피난했던 것입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도 이 작전에 투입이 되었는데, 이 배는 원래 일본 요코하마 항에 정박하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갑자기 흥남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는 와 보니까 중공군이 바로 코 앞에 와 있는 그런 다급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레너드 라루’라는 이 35세의 젊은 선장은 실고 있던 물자들을 다 바다에 던지고 피난민들을 최우선으로 태웠다고 합니다. 나중에 배가 공해상으로 빠져나와 선원들이 탑승객을 세어보니까 14000명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일로 이 배는 가장 많은 사람을 태우고 항해한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배가 거제도에 도착할 때까지 사흘 동안 5명의 아기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아이들이 지금도 살아있다면 오늘이나 내일이 만 65세의 생일이 될 것입니다. 이 사건을 두고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라루 선장은 나중에 이렇게 회고하였습니다.
 “저는 때때로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그 작은 배가,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태우고. 어떻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그 많은 위험을 극복했는지를. 그해 크리스마스에 한국의 검은 바다 위에서 하느님의 손길이 제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메시지가 저에게 전해 옵니다.”
 레너드 라루 선장은 전쟁이 끝난 후 한 동안 행방이 묘연해졌었습니다. 어느 언론사 기자가 추적과 추적을 한 끝에 알아낸 것이 그가 뉴저지의 어느 산골에 있는 한 수도원에 들어가 수사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그 수도원에서 마리너스 수사라는 이름으로 47년간을 조용히 기도하고 일하며 살았던 것입니다.(1956년 12월 25일 수도서원, 2001년 10월 14일 선종)
 그 수도원은 엄청 넓은 땅을 가지고 있는데 크리스마스트리를 키워서 파는 일을 주 수익사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집집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한 15년 정도 키운 생나무, 그것도 전나무로 트리를 만들어 세우고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지내는 것입니다. 
 레너드 라루 선장이 한국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왜 수도자가 되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무언가 큰 체험을 하였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리너스 수사님도 일생 그 전나무를 키우며 공방에서 일하고 기도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공지영 작가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알아버리고, 느껴버리고, 보아버린 사람이 택할 일은 많지 않았을 것 같다. 아 어떻게 이것을 설명해야 할까. 멀고 깊은 우주의 신비를 본 사람이 사람들이 북적이는 유흥지를 보러 다닐 필요가 없듯이.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에 젖은 귀가 길거리 유행가를 굳이 들을 필요가 없듯이. 명화의 깊이를 알아 버린 사람이 이발소 그림을 더 볼 필요가 없듯이.”
 하느님을 깊이 체험하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번 성탄절에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런 은총을 주시도록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자비의 특별 희년의 주제 성구가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오늘날 이 각박하고 인정이 메말라가는 세상에, 전쟁과 폭력과 테러가 난무하는 이 살벌한 세상에 세례의 은총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가 된 우리가 아버지의 인자하신 모습, 아버지의 자비의 얼굴을 보여 주자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레너드 라루 선장이 65년 전 그 급박한 상황에서 자신의 배의 모든 물자를 바다에 던져 버리고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이라도 더 배에 오르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였다는 것, 이것이 바로 자비의 실천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기 예수의 모습으로, 그것도 가장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오셨다는 것이 성탄의 신비이며 가장 큰 자비의 모습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자비의 얼굴이 되어주고 성탄의 기쁨을 같이 나누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