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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일꾼 (예수성심시녀회 총원장 선출 미사 강론)
   2016/01/18  14:56

예수성심시녀회 총원장 선출 미사


2016. 01. 16.

 

찬미예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나누고 난 뒤에 동산에 올라가 기도를 하신 후 악당들에게 잡히시던 날 밤에 일어난 일입니다. 한 병사가 예수님을 체포하려하자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뽑아 그 병사의 귀를 잘라버렸습니다.(요한복음에는 칼을 뽑은 사람은 베드로이며, 귀가 잘린 사람의 이름이 ‘말코스’로 나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제자를 나무라십니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병사의 귀를 만지시며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병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Happy New Ear!” Happy New Year!
오늘 예수성심시녀회 총원장수녀님을 선출하는 날이라 모두 심각하신 것 같아 유머 하나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지난 주 5일부터 2주간 동안 예수성심시녀회 정기총회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그 마지막 날로서 앞으로 4년간 수녀회를 이끌어 나갈 장상을 이 미사 후에 선출하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무엇보다 당신 마음에 드는 총장수녀님을 선출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혜와 분별력을 주시기를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올해 우리나라도 4월에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습니다. 아직 4개월이나 남았지만 요즘 신문을 보면 어느 선거구에 누가 나오느냐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친박이라 하고 또 진박이라고 합니다. 친박은 박대통령과 친한 사람이라는 뜻이고, 진박은 대통령께서 진실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정박이라는 사람도 있다고 해요. 정박이란 그런 친박과 진박을 정리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친박이니 진박이니 정박이니 하는 사람 없지요?
예나 지금이나 어떤 공동체를 이끌어갈 리더를 뽑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리더에 따라 공동체가 흥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작든 크든 리더가 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기에 우리는 그 리더를 신중하게 잘 뽑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수도회 장상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좀 더 구체적으로 예수성심시녀회의 총장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오늘 제1독서인 사무엘 상권 말씀(9,1-4.17-19; 10,1)은 사울이라는 사람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는 장면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되어 처음에는 나라를 잘 다스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하느님의 눈 밖에 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우신 사람도 잘못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잘못 하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왜 잘못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사울인데 잘생긴 젊은이였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그처럼 잘생긴 사람은 없었고, 키도 모든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컸다.”(사무엘 상 9,2)
사울은 이처럼 키가 크고 잘생기고 또 용맹합니다. 그야말로 완벽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그의 걸림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너무 잘났던 것입니다. 자기도취와 교만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하느님께 의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을 뽑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다들 부족한 가운데 살아갑니다.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기에 서로 돕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자기만 똑똑한 리더를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열린 마인드를 가지고 협력 잘 하고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헌신할 줄 아는 리더를 원한다고 하겠습니다.
사울 왕이 하느님의 눈 밖에 나고 난 뒤에 사무엘은 하느님의 지시로 베들레헴에 사는 이사이라는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이사이의 아들 중에서 한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으로 점지해 두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무엘이 한 아이 앞에 서서 ‘바로 이 아이구나’하고 생각했을 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
오늘 복음(마르 2,13-17)은 예수님께서 세관에 앉아있는 레위라는 사람을 부르시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관복음서에 공통으로 나오는 내용입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세리 이름이 레위가 아니라 마태오로 나옵니다. 
하여튼 이 구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부르신다는 것, 그리고 어떤 지위나 학식이 아니라 그 속마음을 보시고 부르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당시 죄인으로 취급받던 세리를 당신 제자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뽑아 3년 동안 당신의 제자로, 당신의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부족한 우리들을 당신의 일꾼으로 뽑으신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지난 1년간 지냈던 ‘봉헌생활의 해’가 저물고 ‘자비의 특별 희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자비는 교황님께서 옛날에 처음 성소를 받았을 때부터 체험하였던 요소인 것 같습니다. 칙서 ‘자비의 얼굴’에도 언급이 되었습니다만, 교황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오를 부르시는 복음 구절을 설명하는 베다 성인의 말씀인 ‘자비로이 부르시니’라는 말씀을 당신 문장의 사목표어로 선택하신 것을 보면, 자비는 교황님의 사목활동의 중심 노선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자리에 있든 수도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하며, 아버지께서 자비로운 것처럼 우리도 늘 자비로운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