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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목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사제서품미사 강론)
   2016/01/22  14:1

사제서품미사


2016. 01. 20. 성 김대건 기념관

 

오늘 이 미사 중에 열세 명의 부제님들이 사제로 서품을 받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이 부제들에게 큰 은총을 내리시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제로 태어날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동안 부제님들은 사제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해 왔었습니다. 오래 전에 신학교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사제가 되기 위해 필요한 학식과 성덕을 닦아왔습니다. 그래서 사제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사제가 되면 그 동안 배운 대로, 아는 대로, 그리고 수품을 준비하는 동안 그렇게 살겠다고 결심한 대로 살아가리라 다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경우에 얼마 안 가서 신부님들이 본당이나 단체에서 시행착오를 하고 신자들과의 사이에 불협화음이 일어나는 일들이 생겨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 복음(마태 20, 25-28)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는 백성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백성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신 배경을 알고 계시지요?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찾아가서 엎드려 절하고는 이런 청탁을 하였던 것입니다. “스승님의 나라가 오면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도록 해 주십시오.”(마태 20,21)
이건 인사청탁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슨 권력자의 나라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들이 지금 무엇을 청하는지 알기나 하느냐?’하고 꾸중을 하시고는 제자들을 모아 놓고 오늘 복음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많은 분량이 제자들을 부르시고 가르치고 양성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밤낮으로 말씀과 모범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양성하였지만 제베대오의 두 아들과 같은 사태가 온 것입니다. 
정말 우리는 자신이 깨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처절하게 깨지지 않으면 인간 내면에 숨어있는 허영심과 명예욕과 소유욕 등 주님의 제자가 되는 데 있어서 정말 쓸모없고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들을 여전히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직자가 되었어도 세상적인 사고와 행동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예수님의 제자들은 마지막에 스승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목격하였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뿐 아니라 성령을 뜨겁게 받았기 때문에 자신이 깨지고 새로운 사람들로 태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부제님들도 오늘 저와 많은 선배 사제들의 안수를 받고 기름 바름을 받으면서 자신이 처절하게 깨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사제로 새로이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오늘 제1독서인 코린토 2서 4장 5절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들은 백성들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 커다란 변화와 쇄신을 가져오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키워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그분의 소박함과 검소함, 어떤 사람에게도 가까이 다가가는 친밀함, 그리고 그분의 부드러움이라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자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비’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사목방향인 것입니다. 
‘자비의 특별 희년’의 주제 성구가 무엇입니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지난 연말에 성탄절을 지내고 난 후 어떤 신부님의 본명축일을 맞이하여 계산동에 있는 어떤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교구청으로 걸어서 들어오는 길이었습니다. 성모당 앞 정원에 성탄구유를 꾸며 놓았는데 그 앞을 지나가면서 한 신부님이 아기 예수님 앞에 편지 하나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집어서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놀랍게도 저에게 온 편지였던 것입니다. 
편지 내용은 어느 성당에 다니는 어떤 자매님인데, 우리 본당 신부님 도저히 못 살겠으니까 다른 데로 보내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신부님 제발 우리 성당에 좀 더 계시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신부님과 대화는 몇 번 없었지만 참으로 온유하시고 우리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주시고, 또 꼬맹이들까지 챙겨주시고 얼마나 사랑을 주시는지, 어떤 때는 과연 저럴 수가 있을까 하고 의구심이 들 정도로 잘 해 주시는데, 임기 때문에 떠나실 때가 다 되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편지를 받으면 저는 누구보다도 기쁩니다. 주교로 살맛이 나는 것입니다. 이런 신부님이 진정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이요 하느님과 백성을 진정으로 섬기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자비는 교회 생활의 토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의 모든 사목활동은 온유함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 온유함을 신자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복음 선포이든 세상에 대한 증언이든 그 어떠한 것도 자비가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대한 신뢰도는 자비와 연민이 가득 찬 사랑에 달려 있습니다.”(자비의 얼굴 10항)
사목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인 것입니다. 
 
오늘 이 부제님들이 사제품을 받을 수 있도록 불러주신 하느님의 자비에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부제님들이 사제가 되어 진정으로 하느님과 백성을 섬기는 사람이 되고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