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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2016년 청소년 합동 견진성사 미사 강론)
   2016/02/22  16:8

청소년 합동 견진성사


2016. 02. 21. 성 김대건 기념관

 

찬미예수님! 
오늘 견진성사를 받으시는 286명의 청소년 여러분들에게 미리 축하를 드리며, 여러분 모두가 성령의 은혜로 주님의 성숙한 자녀로 오늘 새롭게 태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견진성사는 주교의 안수기도와 크리스마 성유의 도유로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는 성사입니다. 견진성사를 통하여 성령께서 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견진성사는 우리가 예전에 받았던 세례성사를 완성하게 하고, 성령의 은혜로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확고하게 해주는 성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견진성사를 영어로는 ‘Sacrament of Confirmation’이라고 합니다. ‘Confirm한다.’는 말은 ‘확실하게 한다.’ ‘확고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견진’이라고 할 때 ‘견’자가 ‘굳을 堅’자입니다. ‘굳게 한다,’ ‘단단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단단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예전에 물과 성령으로 세례성사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지만 아직 하느님께 대한 믿음도 약하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도 약하며 사랑 실천의 의지도 약합니다. 그래서 오늘 견진성사를 통하여 여러분들에게 특별히 성령의 일곱 가지 은혜를 내리셔서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심으로써 더욱 성숙한 신앙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들은 자신의 믿음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 있고 담대하게 전할 수 있으며, 자신의 삶으로 하느님을 증거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올해가 무슨 해이죠? 원숭이 해? 병신년? 가정 복음화의 해이며 자비의 특별 희년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50주년을 기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지난 12월 8일부터 올 11월 20일까지를 ‘자비의 특별 희년’으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자비의 특별 희년’ 주제 성구는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죄인인 우리들에게 끊임없는 사랑과 용서를 베푸십니다. 우리도 이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의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자비의 실천은 마음의 어떤 변화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먼저 가족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하여 감사의 표시도 잘 안 하는 학생들이 있지요?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힘없고 어려운 동료가 있다면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작년부터 우리 교구가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도 하느님 자비의 실천의 한 일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비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답게’ 살아야 합니다. 주교는 주교답게, 사제는 사제답게, 수도자는 수도자답게, 평신도는 평신도답게 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답게, 가톨릭신자답게, 학생답게, 선생님답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2월 16일이 무슨 날이었습니까? 김수환 추기경님의 기일입니다. 그리고 윤동주 시인이 돌아가신 날(1945년)이기도 합니다. 
지난 2월 14일은 무슨 날이었습니까? 발렌타인데이라고 하지요? 발렌티노 성인 기념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은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기도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나 윤동주 시인이나 성 발렌티노나 안중근 의사나 이 모든 분들의 공통점은 바로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참으로 ‘답게’ 사신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길게 사셨든, 짧게 사셨든 삶의 길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받은 소명을 얼마나 충실히 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오늘 복음말씀(루카 9, 28-36)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는데 예수님의 모습이 거룩하게 변화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도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아서 베드로가 나서서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 제안에 아무 대답도 하시지 않으십니다. 다만 구름 속에서 이런 말씀이 들려올 뿐입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가톨릭 신자로서 그분의 말씀을 잘 듣고 있습니까? 
오늘 제2독서인 필리피서(3,17-4,1)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3,20)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로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3,19)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시민인 것입니다. 하늘의 시민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견진성사를 받는 사람들도 이런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주님 안에서 굳건히 서 있어야 합니다. 장차 주님께서는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제 이 강론을 마친 후에 신앙고백을 하고 견진대상자들을 위해 성령안수기도를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난 뒤 견진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마에 크리스마 성유로 십자표를 그어드릴 것입니다. 이 십자표는 예수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하여 짊어지시고 매달시고 돌아가셨던 바로 그 십자가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거룩하게 변모하신 뒤에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하는데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했습니까? 장차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루카 9,31), 즉 죽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교회는 사순 제2주일 복음으로 늘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의도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난 없이는 영광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주님의 일꾼이요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이 십자가를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세상에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을 열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다시 오시기를 기도합시다.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진정으로 회개시켜주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시켜주시도록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언제, 어디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오히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바르고 신실한 믿음을 우리 모두가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