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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든 것을 가진 자 (성유축성미사 강론)
   2016/03/27  13:55

성유축성미사


2016. 03. 24. 계산주교좌성당

 

오늘 우리는 이 미사 중에 교회가 앞으로 일 년 동안 사용할 병자성유와 예비신자성유, 그리고 축성성유를 축성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미사를 ‘성유축성미사’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유축성 전에 특별히 신부님들의 서약 갱신이 있을 것입니다. 모든 신부님들은 자신이 예전에 사제품을 받았던 때를 기억하며 주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제 직무에 더욱 충실할 것을 다짐하시고, 우리 교우분들은 오늘 서약 갱신하시는 신부님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올해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을 맞이하시는 조정헌 바드리시오 신부님, 이창배 안드레아 신부님, 최시동 세례자 요한 신부님, 이대길 시메온 신부님, 그리고 김용길 바오로 신부님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난주에 일본인 순교자 고이치 디에고와 조선인 순교복자 카이요의 순교 현양비를 제막하고 축복하기 위해 일본 나가사키를 다녀왔었습니다. 이 순교현양비는 이 바오로 대주교님께서 몇 년 전부터 준비하고 추진해 오셨던 것으로 이번에야 결실을 맺게 되었는데 신앙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상당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가톨릭신자가 된 사람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당시 한 5만 여 명이 포로로 잡혀갔다고 하는데 그 중에 5천명 이상이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카이요라는 사람도 그 중의 한 사람인데, 그는 원래 불교의 승려였지만 좋은 주인을 만나 천주교를 알게 되고 세례를 받아 신자가 된 사람입니다. 그는 열성이 하도 대단하여 나중에 예수회의 회원이 되었으며 결국 신앙 때문에 모든 권력을 잃어버린 다카야마 우콘이라는 유명한 영주와 함께 필리핀으로 유배를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콘이 유배지에서 죽자 카이요는 다시 일본 나가사키로 밀입국하여 사람들에게 몰래 전교를 하였으며, 감옥에 갇힌 신부님을 면회하러 제 발로 찾아갔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고이치 디에고를 만나 같은 감방에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감시하는 옥리에게까지 전교를 하여 하느님을 믿게 하였다고 합니다. 일본인 고이치 디에고와 조선인 카이요는 같은 감방에서 서로 우애 있게 지내다가 1624년 11월 15일 한 날 한 시에 나가사키의 니시자카 언덕에서 화형으로 순교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민족이 다른 이 두 분의 순교를 함께 기리기 위한 현양비를 이번에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번에 이 순교현양비를 나가사키에 세우면서 느낀 것은 신앙 안에서는 국적도 민족도 언어도 뛰어넘어 하나가 될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교자들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것은 다 쓰레기로 여겼던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제직을 세우셨던 오늘 우리도 순교자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것은 다 쓰레기로 여기며 목표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가도록 다짐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언제나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살든지 죽든지 나의 이 몸으로 아주 담대히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입니다.”(필리피 1,20-21)
 
올해는 병인순교 1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병인박해는 조선시대의 마지막 가장 큰 박해였습니다. 8천 명 이상의  신자들이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습니다. 우리 교구 제2주보성인이신 이윤일 요한과, 복자성당에 무덤이 있는 세 분의 복자들, 그리고 한티에서 돌아가신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도 병인박해와 그 연장선상에서 순교하신 분들입니다. 
103위 성인 중에는 성직자가 11분이 계시는데 한 분이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시고, 나머지 열 분이 파리외방전교회 성직자들입니다. 열 분 중에서 일곱 분이 병인박해 때 순교하셨습니다. 조선교구 4대 교구장이셨던 베르뇌 장 주교님이 파리외방전교회의 세 분의 신부님과 함께 1866년 3월 7일에 새남터에서 순교하셨고, 뒤이어 5대 교구장이 되셨던 다블뤼 안 주교님께서 두 분의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님들과 그리고 장주기 요셉과 황석두 루카와 함께 3월 30일 충남 보령 갈메못에서 순교를 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한 달 전에 갈메못 성지를 순례하였던 적이 있는데 성지 기념관 입구에 다블뤼 주교님의 좌우명이라는 글이 적혀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진 자다.”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주교님께서 평소에 어떻게 사셨던가를 그 한 마디의 말이 다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4대 교구장 베르뇌 주교님께서 1866년 2월 23일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 포고령이 내린 날 체포되어 3월 7일에 순교하셨고, 5대 교구장 다블뤼 주교님께서 3월 30일에 순교하셨으니 다블뤼 주교님은 불과 23일간 교구장을 하신 셈이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다블뤼 주교님과 위앵 신부님과 오메트르 신부님, 이 세 분의 성직자들은 스스로 자수하여 체포되시고 순교하셨던 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자수를 하면 신자들의 목숨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그리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사셨던 분들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양들을 사랑하지 않는 목자가 있을 수 없고 신자를 사랑하지 않는 사제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제가 자신이 생각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원하는 방식으로, 예수님께서 하셨던 방식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성품성사와 성체성사를 세우신 것을 기념하는 성목요일입니다. 그리고 내일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성부께 오롯이 봉헌함으로써 이 두 성사를 완성하신 성금요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틀 동안에 당신 사랑의 진면목을 다 보여주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지극히 낮추시고 제자들의 발을 하나 하나 다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을 빵과 포도주에 담에 우리의 양식으로 내어주셨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너희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성체성사는 자신을 다 내어주는 것입니다. 사제의 삶이 바로 성체성사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 금요일에 실제로 당신 몸을 우리를 위해 다 바치셨고 당신의 피를 다 쏟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12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 가셔서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아닌 당신 자신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히 속죄 받을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이렇게 크신데 우리 어찌 주님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어찌 주님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입당송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셨으니,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비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