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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 (교구소속 군종사제단 모임 미사)
   2018/12/04  11:2

교구소속 군종사제단 모임 미사

 

2018년 12월 3일 교구청 경당

 

찬미예수님, 오늘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입니다. 오늘 복음(마태 8,5-11)에서 백인대장이 예수님께 찾아와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하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고쳐주겠다.’고 하셨지만, 백인대장은 자신이 ‘주님을 자기 집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다.’고 하며 ‘그저 한 말씀하시면 나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말에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하고 감탄하십니다.

 

오늘 교구장님을 모시고 미사를 봉헌하는 여기에서, 이 백인대장의 대목에서 두 가지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우리는 소속이 분명해야 하겠습니다. 백인대장은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하면 옵니다.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한다.’고 말하면서도, 스스로는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하고 분명히 자기 소속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군종신부님들은 군종교구장과 파견하신 교구장을 통하여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어야 하겠습니다. 요즘은 세속화의 물결이 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으며, 세상 사람들은 각자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쾌락을 섬기며 살고 있으며, 자칫 우리 신자들도 깨어있지 못하면 휩쓸려버리는 듯합니다. 이런 시대 우리 사제들은 정확하게 하느님께 속하며, 하느님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것을 추구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 맘대로 하려고 사제가 된 것이 아니라 사제단의 일원으로 직속상관인 하느님께서 교회 장상을 통하여 정해주시는 선교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사제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러한 소속을 정확하게 새겨야 하겠습니다. 군인들이 해외파병 때 국가소속 표시로 태극기를 붙이던데, 우리 신부님들은, 성체와 말씀을 현존케 하면서, 생활로 풍기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통하여 우리의 소속이 하느님께 속함을 밝히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폭넓은 의견 수렴이라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왕정제도가 무너지고 민주사회가 등장하면서,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계속해서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를 도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노달리티’ 곧 ‘공동 합의성’의 정신을 바탕으로, 교황님께서는 주교 시노드를 통해서, 교구장님께서는 주교평의회와 사제평의회를 통해서 더 폭넓게 의견을 수렴하고 계십니다. 자기 종의 치유를 건의 받고 예수님 앞에 나선 백인대장에게서도 이런 의견 수렴의 모습을 봅니다. 따라서 우리 신부님들께서도 본당의 모든 일을 결정하고 진행하는데 있어서 신자 백성들의 의견이 어떠한지를 성찰하고, 식별하고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본당에 소공동체 이론을 이해하시는 신부님이 가셨는데, 본당 간부들이 ‘신부님 이번 성탄에 어떻게 할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그대로 하겠습니다.’하고 하명을 기다리더랍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성탄 행사를 계획하고 진행하게 하는데 몇 년이 걸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본당 신자들은 소공동체 정신을 갖추고 있는데, 새로 부임하신 신부님이 이번 성탄에는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한다면 서로 간에 불편함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이 지나면 우리 교구도 은퇴신부님의 숫자가 급격히 많아지기 때문에 신부님 한 분이 몇 개의 본당을 맡아야 하고, 신자 공동체에도 더 많은 자율성을 주어야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미래 비전속에서도 내가 맡은 본당 공동체와 더 많이 소통하고 협력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군종신부님들께서는, 체력 검정 등 군인으로서 요구되어지는 것들도 잘 수행하시고,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신자들에게 나누어주고, 기도와 성무일도를 바치는 등 사제로서 요구되어 지는 것들도 잘 수행하시면 좋겠습니다. 서로 기도하고 힘이 되어 주며, 기회가 되는 대로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