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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 강론)
   2019/04/25  16:52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 강론

 

파스카 성야 미사 : 계산주교좌성당, 낮 미사: 기계성당

 

찬미 예수님.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축하합니다. 다함께 큰소리로 알렐루야를 외쳐봅시다. “알렐루야.” 부활의 기쁨이 모두에게 또 가정마다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예전에는 부활에 큰 기쁨을 느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최근 들어 그렇지 못하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손바닥의 스마트폰 등 재미난 것들이 많아서 그런가 싶습니다. 부활의 기쁨의 크기는 내가 얼마나 부활을 잘 준비하였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금은 부활의 절대적인 기쁨을 생각해 봅니다. 부활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 또 바로 나를 구원하시려 태어나셨고, 죽임을 당하셨고, 이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인류를 사랑하셔서, 그리고 바로 나를 사랑하셔서 이 세상에 탄생하신 예수님,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사랑하고 있다고 우리 인간의 말로 전하기 위해 태어나신 하느님의 말씀이셨지요. 그런 분이 죄 많은 인류를 위하여 또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음을 겪으셨습니다. 자신의 죄는 없는 분이 오히려 모든 이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바치시려 죽임을 당하셨죠. 이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인류를 위하고 분명히 바로 나를 위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부활 대축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성대하게 기리는 대축일인데도,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파스카 성야의 루카복음(24,1-12)은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하고, 낮 미사의 요한복음(20,1-9)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고 합니다.

 

부활에 앞서 먼저 죽음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이 어떤 죽음이었습니까? 십자가 형틀 위에서 매우 모욕적으로 죄인으로 사형을 집행당하셨지요. 왜 죄 없는 분이 죄인의 죽음을 겪은 것일까요? 오로지 죄 많은 인류와 죄 많은 나를 용서 받게 하려고 대신 속죄의 희생적 죽음이었고,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주는 죽음이었습니다.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말하죠(로마 5,6-10).

 

세상 사람들은 죄인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을 어리석은 것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다고 불리는 죽음이 바로 나를 위한 것, 나의 구원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태어나셨다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셨다는 것을, 내가 알아듣고 깨닫는다면, 주님의 부활이 나와 동떨어진 사건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사건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주님 부활의 기쁨은 바로 나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당신의 십자가 길을 거쳐야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부활에 이르기 위해서는 각자의 십자가 길을 거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 목숨으로 값을 치러 죄를 용서받게 해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을 깨닫고 우리들도 구체적인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각자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받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직장에서도 학교에서 감사와 찬미의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날마다의 십자가를 통해 부활에 이르면 좋겠습니다. [일상에서의 십자가 길이라 하니 힘들게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하나 여쭈어 봅니다. 서양에서 모든 길은 어디로 통한다고 하나요? 로마.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추풍령, 죽령, 문경세제를 넘거 가는 길을 뭐라고 했나요? 한양길. 종착점을 나라 로마길, 한양길리라 불렀지요. 그러므로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 길을,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십자가의 길이라 부르지만, 우리는 또한 부활길이라고도 불러야 하겠습니다. 로마길 한양길처럼 우리 십자가의 길을 종착점인 부활을 겨냥하여 부활길이라 부르며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예수님 뒤따라 우리도 부활하러 나아갑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