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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네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 강론)
   2020/04/04  19:48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

 

2020년 4월 5일, 주교좌 계산 대성당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평화를 빕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4월 9일부터 차례로 온라인 개학만 하네요. 이렇게 방송미사로 또다시 만나 뵙습니다.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성지를 축복하고 수난 복음을 선포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걷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향하여 묵묵히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 갑니다. 

 

십자가를 보면 극심한 고통과 괴로움, 절망과 죽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셔서, 아드님을 십자가 희생 제물이 되게 하셨는가!’ 느낍니다. 또 ‘아드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셔서, 스스로 십자가에 목숨을 바치셨는가!’ 느낍니다. 우리 죄인들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큽니까! 보잘 것 없는 나를 위해 목숨 바치신 그 큰 사랑을 느낍니다. 사실 십자가는 로마 시대에 죄수를 처형하던 끔찍한 사형도구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죽기까지 사랑하시며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키신, 사랑과 구원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볼 때마다, 우리가 십자성호를 그을 때마다, ‘목숨 바쳐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 저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수난기의 예수님을 봅니다,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겠다고 하고서는. 세 번이나 모른다 했던 베드로도 미워하지 않으셨고요. 친구라 불리고도 은전 서른 닢에 입맞춤으로 당신을 팔아넘긴 유다도 탓하지 않으셨죠.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함께 깨어 있으라.’ 해도 여전히 자고 있는 제자들도. ‘호산나! 다윗의 자손, 이스라엘 임금님’을 외치곤 돌변하여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군중도. 침 뱉고 때리고, 조롱하고 옷을 벗기고, 십자가에 못 박고, ‘내려와 보라.’고 조롱하던 병사들도.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하소연해도 짐짓 대답 없으신 아버지도. 예수님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탓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용서하셨습니다.

 

요즘 우리는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위해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저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안타깝고 아쉬운 감염 사례를 뉴스에서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미워하지 말고 탓하지도 말며, 오히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합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의료물자 부족 사태를 겪는 미국에서, 의사가 과속으로 단속되었다고 합니다. 의료 보충요원으로 일하러 멀리서 오다가 겪은 일인데요. 헌 마스크밖에 없는 것을 본 경찰이 지급받은 N95마스크를 5개나 건넸는데, 마스크를 받고는 눈물을 터트렸다고 하네요. 사실 우리 주변에도 이러한 미담이 많을 것입니다. 하느님 순종과 이웃 사랑의 차원에서 각자 생활방역을 실천하시는 신자 여러분들, 환자들을 보살피는 의료진들과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수많은 분들이 바로 사회를 따뜻하게 하는 주인공이죠. 감사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목숨 바친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감사드리며, 받은 그 사랑을 나누도록 합시다. 각자 십자가는 어쩌면 고통의 십자가이겠죠, 그러나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기꺼이 지고 갑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하신 말씀에 순종합시다. 그리고 십자가의 순종을 통하여,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는 기쁨을 우리도 맞이하도록 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