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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화를 위한 오솔길, 날마다 예수님 따라 (평화를 위한 오솔길 파견미사 강론)
   2020/08/25  12:51

평화를 위한 오솔길 파견미사

 

2020년 8월 23일, 포콜라레 남자공동체

 

찬미예수님, 대구 포콜라레 2젠에서 주관한 <평화를 위한 패스웨이(오솔길)> 파견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이번 오솔길의 주제는 평화, 인권, 적법성, 정의였습니다. 이미 8월 21일 오프닝에 이어 22일 남북 그리고 종교 속의 평화를 살펴봤고, 평화의 음악회를 가졌으며, 오늘 23일 4시에는 ‘어떻게 평화를 살 수 있을까?’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을 살펴보고, 또 구체적인 실천 제안도 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미 잘 살펴보셨겠지만, 저도 <평화, 인권, 적법성, 정의>의 주제를 묵상했습니다. 짧게 나누고자 합니다. 인권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늘로 부여받은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권리를 말하며, 생명권, 자유권, 평등권, 생존권 등이 있다고 합니다. 적법성은 법에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법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강제적 규범을 말하는데, 자연법과 관습법과 국가법을 모두 포괄합니다. 정의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공정하고 평등한 상태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뺏으면 정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라틴어로 법은 단수형 jus, 복수형 jura 입니다. 인권은 jura humana입니다. 정의 justitia는 ‘적법한, 올바른’을 뜻하는 justus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결국 인권, 적법성, 정의는 모두 같은 어원 법(jus)에서 나왔습니다. 한 사람이 타고 난 천부적 권리가 인권이고, 많은 사람이 골고루 그 인권을 누리도록 하는 사회 규범이 법이며, 각자가 사회 안에서 자신의 인권을 실현하도록 하는 가치가 정의라고 할 때, 정의가 잘 실현되어야 불평등이 해소되고 평화를 이룰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속담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다.’‘사흘 굶으면 포도청 담도 뛰어 넘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무리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는 정의가 실현되어 평화가 이룩되었어도, 며칠씩 밥을 굶는 상황을 만나면 법을 위반하고 도둑질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소설 속의 장발장도 그랬죠. 이런 어려운 사람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신 몫을 받는 정의는 실현되었으니, 나는 더 해줄 것이 없소.’하지 말고, 오히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9,13) 그리고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마태 18,33 참조)하신 말씀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참조)하고 강도당한 이에게 이웃이 되어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강도도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어쩔 수 없이 강도를 해야만 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감옥에 갇힌 이를 돌보라...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마태 25,36 참조)이라고 하시며, 보잘 것 없고 불쌍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하십니다. 결국 평화는, 누군가 자비를 받지 못하면 강도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정의를 뛰어넘어 자비로운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할 때 이루어집니다.

 

끝으로 예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함에 분명한 기준을 주셨습니다. 내가 편리한 대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요한 13,34)입니다. 우리의 이웃사랑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목숨 바쳐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넓게 보면, 평화, 인권, 적법성, 정의의 주제에서도 내가 편리한 대로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신 기준에 따라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초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우리는 아버지의 집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뒤따라 다 함께 가도록 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