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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 없는 믿음 (영남가톨릭교수회 38회 세미나 파견미사 강론)
   2017/07/13  15:54

영남가톨릭교수회 38회 세미나 파견미사


2017. 07. 09. 한티성지

 

작년이 병인박해가 일어난 지 15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병인박해는 1866년에 일어났지만 대원군이 실각할 때까지 한 7년 여 동안 계속된 박해였습니다. 한티성지의 순교자들도 대부분 병인박해 때 돌아가신 분들입니다. 한티는 을해박해(1815년) 때부터 형성된 교우촌이었으니까 한티성지는 순교자들이 살았고 죽었으며 묻힌, 완벽한 성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 한티성지에서 영남가톨릭교수모임의 파견미사를 드리면서 그 옛날 오로지 신앙 때문에 온갖 불편함을 무릅쓰고 이 산골짜기에서 살았으며 그 신앙 때문에 목숨을 바쳤던 우리 선조들을 기억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옛날 순교자들을 생각하면 신앙이 보통 문제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이 무엇이기에 목숨까지 바치는가? 우리는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진정 하느님께서 살아계시고 예수가 우리 주님이라고 믿고 고백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봐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인 로마서 8,9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는가? 이름만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하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2013년 3월 13일에 교황으로 선출 되시고 그 다음 날 시스티나 경당에서 추기경선거인단과 함께 봉헌한 미사에서 이런 강론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선을 베푸는 어떤 비정부기구, 즉 NGO는 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될 수 없습니다. 저는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십자가는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저는 십자가 없이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십자가 없이 걸어가고 십자가 없이 교회를 세우고 십자가 없이 그리스도를 고백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아니라 세상의 속인들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주교, 사제, 추기경, 교황일 수는 있지만, 주님의 제자는 아닙니다.”
이렇듯 믿는다는 것,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산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주교는 자신의 목에 십자가를 걸고 다닙니다. 그것은 결코 명예나 영광의 십자가가 아닙니다. 저는 요즘 그 십자가의 무게를 참으로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를 벗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죽기까지 순종하며 충실해야 하는 십자가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되었다. 그만 내려놓아라.’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지고가야 할 십자가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즈카리야 예언자는, 장차 오실 위대한 임금님은 군마를 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겸손의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들에게 오시는 하느님은 사람들의 상식이나 생각들을 뛰어넘는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은 낮은 자의 모습, 겸손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마태 11,25-30)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11,25-26)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신비는 세상의 지혜나 지식으로 따져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을 열고 자신을 낮추며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자신을 낮추고 보잘 것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신비가 드러났습니다. 
흔히 대학을 ‘상아탑’, ‘지성의 상아탑’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원래 불란서의 어느 비평가가 자신 안에 갇혀 사는 지식인과 예술가들에 대하여 한 비판적인 말에서 시작된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대학이 지식의 상아탑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문 연구를 통하여 인류 발전에 공헌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단순히 지식을 넘어서 참 진리가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그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늘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결코 진리를 깨달을 수 없으며 좋은 믿음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9)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믿고 따라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