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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루르드의 성모님께 의탁해왔던 대구대교구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미사 강론)
   2018/02/13  10:29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미사

 

2018. 02. 11. 주교좌 계산성당

 

오늘은 연중 제6주일이지만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 대구대교구와 주교좌계산성당의 주보이시기 때문에 대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교구를 성모님께서 특별히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기를, 그리고 우리 교구가 쇄신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세계 병자의 날’입니다. 1992년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성모님께서 프랑스 루르드에 발현하신(1858년) 첫날인 2월 11일 오늘을 ‘세계 병자의 날’로 정하여 이날 특별히 모든 병자들의 빠른 쾌유를 위하여 기도하고, 더불어 병자들을 간호하고 치료하는 의료인들의 봉사와 헌신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인이나 집안과 주위의 모든 병자들의 건강을 위하여 기도드리고 성모님께서 도와주시도록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세 분의 젊은 신부님들이 오늘 이 미사를 통하여 해외 선교사로 파견됩니다. 곽재경 루카 신부님이 대만의 다이중교구로 파견되고, 이진희 사도 요한 신부님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방기대교구로 파견되며, 김건호 그레고리오 신부님이 볼리비아의 산타크로즈대교구로 파견됩니다. 이 신부님들에게 하느님께서 복을 내리시고 성모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국천주교회는 성모님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께서 1831년 9월 9일에 조선교구를 설정하시고 초대 교구장으로 브뤼기에를 주교님을 임명하셨는데 그 칙서를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에서 반포하셨습니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로마의 4대 성당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교구의 성모당이 몇 년 전에 이 성당과 유대관계를 맺음으로써 정식으로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성모 순례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레고리오 16세 교황님께서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성 요셉과 함께 조선교구의 수호자로 정해주셨습니다. 
조선교구는 이렇게 성모님의 도움과 교황님의 배려와 조선교구 초대교구장이신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열정과 그 당시 정하상, 유진길 등의 신자들의 열성과 기도로 이루어진 성령의 역사였다고 생각합니다. 

 

교황 비오 10세께서 1911년 4월 8일에 조선교구를 서울교구와 대구교구로 분리 설정하시고 대구교구 초대 교구장으로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을 임명하셨습니다.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께서는 1911년 6월 11일에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주교서품을 받으시고 6월 26일에 대구에 부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처음 맞이하는 주일인 7월 2일에 ‘루르드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을 교구주보로 선포하시고 세 가지를 성모님께서 도와주시기를 청원 드렸습니다. 그 세 가지의 청원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그 세 가지 청원이 다 이루어지면 주교관 경내에 가장 아름다운 자리에 루르드의 성모동굴과 꼭 닮은 성모당을 지어 봉헌할 것을 허원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세 가지의 청원이 몇 년 안에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1917년 7월 31일에 성모당 대지 정지작업을 시작하여 이듬해 10월 13일에 봉헌하였던 것입니다. 올해가 성모당 봉헌 100주년이 되는 것입니다. 

 

계산성당이 처음에는 ‘성모성당’, 혹은 ‘성모당’이라고 불렸던 적이 있습니다. 대구본당 초대주임이신 김보록 로베르 신부님께서 1898년 9월 1일에 이 자리에 최초의 성당을 지어서 봉헌하였는데 그 성당은 십자가 모양의 한옥성당이었습니다. 그리고 루르드의 성모님을 성당 주보로 모셨기 때문에 ‘성모성당’, ‘성모당’이라 불렸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성당 대문 사진을 보면 솟을대문처럼 한옥으로 멋있게 지은 것을 볼 수 있는데 대문 위 현판에 ‘성모당’이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하지만 1893년부터 대구에 진출한 개신교 신자들과 비신자들이 천주교는 하느님을 믿지 않고 성모님을 믿는다고 오해를 하기 시작했고, 또 어떤 이들은 성모당과 천주교를 다른 종교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오해를 없애기 위해 성당 현판을 ‘성모당’에서 ‘천주당’으로 변경했다고 합니다. 
하여튼 대구본당이면서 계산본당의 초대주임이셨던 김보록 로베르 신부님이나 대구교구의 초대교구장이셨던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께서는 파리외방전교회 출신의 성직자로서 ‘루르드의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로베르 신부님은 그 한옥성당이 2년 2개월 만에 화재로 불타버렸는데, 그래도 실망하지 않으시고 루르드의 성모님께 더욱 의탁하며 도움을 청합니다. 그리고 더욱 아름답고 큰 성당을 지어 봉헌하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그 결심대로 로베르 신부님은 서상돈, 정규옥, 김종학 등의 신자들의 협력으로 2년도 채 되지 않아 두 개의 종탑을 가진 성당을 완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03년 11월 1일에 조선교구장이신 뮈텔 주교님께서 오셔서 대구의 최초의 서양식 고딕성당을 축성하여 봉헌하였던 것입니다.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께서는 1911년 7월 2일에 이곳 계산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루르드의 성모님’을 교구 주보로 선언하시고 성모님께서 빈약한 교구의 재정을 맡아주시기를 청하면서 그 세 가지를 도와달라고 청원하였고 성모님께서는 그 청원을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평창동계올림픽으로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으며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기간뿐만 아니라 이 한반도와 세계에 진정한 평화와 안정이 지속될 수 있도록 성모님의 도움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구도 쉽지 않은 난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이 난제들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용기와 지혜를 주시고,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이 땅의 진정한 구원의 방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성모님의 도움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 나라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