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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기 있는 지식인, 평화를 갈망했던 신앙인 (안중근 의사 순국 108주기 추모미사 강론)
   2018/03/29  9:33

안중근 의사 순국 108주기 추모미사


2018. 03. 26. 성모당

 

오늘 안중근 의사 순국 108주기를 맞이하여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 연구소와 대구지방변호사회 주관으로 추모행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행사에 특별히 안 의사님의 후손과 친척 분들이 참석하셔서 더욱 뜻이 깊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 3월에 안중근 의사님 순국 100주년을 맞이하여 대구국립박물관에서 안 의사님 유품 전시회를 가졌었는데 그해 3월 26일 순국 당일에 박물관에서 순국 100주년 기념 추모미사를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작년 3월에는 계산성당에서 추모미사를 드렸었고, 올해는 이곳 성모당에서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구 초대 교구장이셨던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께서 성모당을 봉헌하신 지 100주년이 되는 올해, 이곳에서 안 의사님 추모미사를 드리게 되어 이 또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907년에 국채보상운동을 제창하신 서상돈 회장님께서 1911년에 이곳 일대의 1만 여 평의 땅을 교회에 기증하셨기 때문에 이곳에 천주교대구교구청과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이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께서는 1914년에 신학교를 설립하였고 1917년 말에 계산성당 증축을 위한 모금이 해결됨에 따라 루르드의 성모님께 허원한 대로 남산동에서 제일 높고 좋은 이 땅에 성모동굴을 지어서 1918년 10월 13일에 봉헌하였던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께서 서상돈 선생님과 김광재 선생님께서 제창하신 국채보상운동의 관서지방 책임자로서 열심히 활동하였다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 당시 대구의 애국지사들과 무슨 교류가 있었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안중근 의사께서는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습니다. 안 의사께서 순국하시고 난 후 부인 김아려 아네스 여사께서는 자녀들을 데리고 연해주에서 사시다가 그곳에서 큰 아들 분도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다시 상해로 가서 살았는데, 큰 딸 안현생님께서 그곳에서 대학을 다녔고 불문학을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안현생님께서 6.25동란 때 자녀들을 데리고 대구로 피난 왔었는데 그 당시 최덕홍 주교님께서 기거할 집을 소개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 집이 샬트르 수녀원 대문 바로 옆집인데 안세화 주교님의 복사 겸 전교회장을 하셨던 김영은 야고보 회장님 댁이었습니다. 안현생 여사께서는 1952년에 이곳 남산동, 지금의 송림맨션 자리에 설립된 효성여자대학에서 불문학 교수로 1953년부터 1956년까지 계셨습니다. 
안현생 여사께서는 딸 둘을 두셨는데 황은주씨와 황은실씨입니다. 황은주님께서는 경기도에 사시고 계시다는데 2년 전에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 연구소를 방문하시고 저희 교구청을 방문하셔서 6.25 때 어머니를 따라 대구에 와서 사셨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사셨던 황은실님께서는 2012년에 잠시 귀국하셔서 안중근 연구소와 우리 교구청을 방문하신 적이 있는데 한 2년 전에 별세하셨다고 합니다. 고인의 영복을 빕니다.
이렇게 안중근 의사님과 그 자녀 분들이 대구교구와, 그리고 대구가톨릭대학교와 좋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께서 우리 한국 근대사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끼치고 있는 영향이랄까, 그 의미가 참으로 크다고 생각합니다. 안중근 의사께서는 뛰어난 애국자이셨고 교육자이셨으며 동양평화론을 제창한 평화주의자였고 대단한 문필가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안 의사께서는 투철한 신앙인이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안중근 의사께서는 중국 여순 감옥에 5개월 동안 계시면서 ‘안응칠 역사’라는 자서전을 썼습니다. 그 자서전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879년 기묘 9월 2일 대한국 황해도 해주부 수양산 아래에서 한 남아가 태어나니 성은 안이요, 이름은 중근, 자는 응칠이라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중년에 과거에 급제하시어 진사가 되고 조씨에게 장가들어 배필을 삼아 3남 1녀를 낳으니 맏이는 중근, 둘째는 정근, 셋째는 공근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그 자서전의 전반부에서 안 의사께서는 자신의 집안이 어떻게 천주교를 믿게 되었는지, 그리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떤 활동을 하였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사람들에게 성경 말씀과 교리에 대하여 강연했던 내용을 적고 있는데 무려 여덟 페이지나 됩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안중근의사의 신앙심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910년 2월 14일에 안중근 의사는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게 되는데 그날 안 의사께서는 고향에 계신 어머님과 부인에게 각각 한 통씩 편지를 썼습니다. 여러분들도 몇 번 들었을 줄로 압니다만 그 내용이 너무나 감동적이라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께 올린 편지를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어머님 전상서. 
예수를 찬미합니다. 불초한 자식은 감히 한 말씀 어머님 전에 올리려 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자식의 막심한 불효와 아침저녁 문안 인사 못 드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육정을 이기지 못하시고 이 불초자를 너무나 생각해 주시니 훗날 영원히 천당에서 만나 뵈올 것을 바라오며 또 기도드리옵니다. 이 현세의 일이야말로 모두 주님의 명에 달려 있으니 마음을 평안히 하시기를 천만 번 바라올 뿐이옵니다. 
분도는 장차 신부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희망하오며 후일에도 잊지 마옵시고 천주께 바치도록 키워주십시오. 
그 밖에 드릴 말씀은 허다하오나 후일 천당에서 기쁘게 만나 뵈온 뒤 누누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아래 집안 여러분께 문안도 드리지 못하오니 반드시 천주님을 전심으로 신앙하시어 후일 천당에서 기쁘게 만나 뵈옵겠다고 전해주시기 바라옵니다. 
아들 도마 올림.”

 

참으로 구구절절이 깊은 효성과 깊은 신앙심이 묻어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안의사는 1910년 3월 9일에 면회를 온 홍석구 빌렘 신부님한테 고해성사를 봤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홍신부님의 집전으로 미사가 감옥 안에서 봉헌되었고 안의사께서는 마지막 성체를 받아 모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같이 면회 온 동생 정근과 공근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고.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고.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의사가 예고한대로 1919년 3월 1일 대한독립 만세 소리가 전국 방방곳곳에서 울려 퍼졌던 것입니다. 
안중근의사께서는 시대의 징표를 읽은 참 지식인이었고 선각자였습니다. 자신이 처한 시대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인식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인식한 현실에 몸과 마음을 오롯이 투신하였습니다. 그 당시 아무리 배운 지식인이라 하더라도 그 얼음장 같은 현실에 뜻을 품고 일신을 던지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의사께서는 자신이 믿는 신앙과 민족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았던 것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18세에 신앙을 가진 후 중국 땅 여순 감옥에서 32세의 나이로 순국하기까지 그의 일생은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가 이 민족, 이 나라와 동양 삼국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온 몸을 던졌던 일생이었습니다. 
108년 전에 온 몸을 던져서 평화를 갈구하며 나라를 지키고 참된 신앙을 전파하고자 했던 안중근 토마 의사를 추모하며 오늘날 우리와 우리나라가 처한 이 엄중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참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어제는 예수님께서 수난 받으신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주님 수난 성지주일’이었으며 성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성주간이 끝나면 부활의 아침이 온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안식일 이른 아침에 향유 그릇을 가지고 무덤을 향하여 달려가던 그 심정으로 부활을 기다리며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언젠가 안중근 의사께서 온 몸을 바쳐 추구했던 평화와 공정이 이 땅에 펼쳐지는 날이 곧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이사야 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