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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반도의 평화, 세계의 평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심포지엄 기조강연)
   2018/06/25  9:53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심포지엄 기조강연


2018. 06. 21. 대구관구 대신학원 대강당

 

찬미예수님! 평화를 빕니다! 
오늘날 가장 절실한 단어가 ‘평화’가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첫 마디가 ‘평화’였습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영성체 전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지난 두 달 동안에 정말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꿈같은 일들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4월 27일 남북의 정상이 손은 맞잡고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을 같이 넘어올 때는 가슴이 뭉클해졌고 박수가 절로 나왔습니다. 
6월 12일에도 그랬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막말을 주고받던 두 사람의 스트롱 맨이 그렇게 달라질 수 있는지 참으로 신기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기헌 주교님께는 이번 일이 저보다 더 크게 와 닿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북 평양출신이시고 순교자의 후손이시며 지금은 휴전선 접경지역 교구장이시고 주교회의 민화위 위원장을 맡고 계시니까 그 감격이 대단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저께 이기헌 주교님이 최근에 쓰신 ‘함께 울어주는 이’라는 책을 대구에 있는 바오로딸 서원으로부터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책의 첫 장과 둘째 장이 주교님의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적은 글이었는데, 우리나라의 평화와 남북통일에 대한 염원을 가득 담고 있었습니다. 첫 장 ‘어머니’에 대한 글의 마지막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제 편안히 천국에서 성모님과 함께 이 나라의 평화와 남북통일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우리가 오늘날 맞이하고 있는 이 화해의 물결은 성모님과 이미 천국에 계시는 수많은 순교자들과 성인들의 전구와 살아있는 수많은 신자들의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르바초프를 아시지요? 소련 공산당 마지막 서기장을 지냈었고 1990년 3월에 러시아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소련을 비롯하여 동구라파가 민주화 된 것은 이 사람이 추진했던 개혁, 개방 정책, 소위 페레스트로이카의 영향도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후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어느 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을 알현한 자리에서 동구라파가 변화된 것은 교황님 덕분이라고 말씀드리니까 교황님께서는 ‘아닙니다. 성모님 덕분입니다.’라고 대답하셨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하여튼 간에 세계 역사에서 고비 때마다 교회와 교황님께서는 어떤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1962년 10월에 있었던 쿠바 사태를 아시지요?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했던 일입니다. 쿠바는 바로 미국의 코앞에 있는 나라입니다. 잘못하면 세계 핵전쟁이 일어날 뻔 했던 일이었습니다. 그 사태를 중재하셔서 위기를 넘기는 데 큰 역할을 하셨던 분이 성 요한 23세 교황님이십니다.  
이번 한반도에 불어온 이 화해의 바람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계속해서 힘을 실어주시고 격려를 해주셨던 덕분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황님께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셨고, 이번에 있었던 남과 북, 그리고 북한과 미국 사이의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여러 번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났던 한국전쟁이 1953년 7월 27일에 정전협정을 맺었으니까 올해로 65년이 됩니다. 지난번 북미회담 때 종전선언이 있기를 바랐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다다르지 못하였습니다. 앞으로 남과 북과 미국과의 여러 차례의 회담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한반도에 종전선언과 함께 평화협정까지 곧 이루어지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꼭 그렇게 되도록 열심히 기도하여야 할 것이며 정치인을 비롯하여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곧 세계 평화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오늘 심포지엄의 주제가 ‘남북 교류협력을 통한 한반도의 미래’입니다. 오늘 발제하시는 분과 토론하시는 분들이 잘 준비하셔서 말씀드리리라 믿습니다. 저는 몇 가지 알고 있고 경험한 것들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남북 교류협력은 정치적인 화해와 협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정치적인 형편에 따라 부침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다행히 정치적인 화해와 협력이 급격하게 증진되고 있기 때문에 참으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되고 남북 교회 간의 교류협력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리라 봅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82년 12월에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앞두고 주교회의 산하에 ‘북한선교부’를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민족화해위원회의 전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1989년 서울에서 열렸던 세계성체대회를 앞두고 ‘한마음한몸운동’이 일어났고 북한돕기운동들이 뜻 있는 교구마다 일어났습니다. 우리 교구도 북한선교기금을 1990년대 초부터 모은 것으로 압니다. 
1995년과 96년경에 북한에서 대홍수와 함께 큰 가뭄이 발생해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때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사랑의 국수 나누기 운동’을 펼쳤던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함경북도 나진선봉특구에 국제가톨릭병원을 지었습니다. 원래는 서울의 김수환 추기경님, 수원의 김남수 주교님, 대구의 이문희 대주교님 합의로 함께 추진을 하다가 김남수 주교님께서 돌아가시고 김수환 추기경님도 은퇴하시고 어렵게 되었는데, 이문희 대주교님께서는 포기하시지 않고 거의 혼자 주도로 독일의 오틸리엔 성 베네딕도 수도원을 통하여 병원이 완성될 때까지 많은 지원을 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두 차례 평양을 방문하였습니다. 2000년 1월 말에 한 번, 그리고 지난 2015년 12월 초에 주교회의 민화위 소속 주교님들과 함께 방문하였습니다. 
2000년 1월말에는 국제옥수수재단 이사장 김순권 박사님(경북대 명예교수)과 서울의 김택암 신부님, 인천의 박창일 신부님과 함께 방문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북한은 경제적으로 참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평양 시내 건물 곳곳에 여러 가지 구호들이 붙어있었는데, 그 중에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글도 있었습니다.
북한에는 북한 당국의 초대장 없이는 갈 수 없습니다. 그 당시 제가 갈 수 있었던 것은 대구교구가 북한의 옥수수 농사를 위하여 비료를 지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 농업과학원의 초청으로 갈 수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교구 사무처장을 하던 제가 교구를 대표하여 갔던 것입니다. 
평양에 도착한 다음 날이 주일이라서 오전에 장충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몇 명 안 되는 성가대였는데 성가를 얼마나 잘 부르는지 놀랐습니다. 
미사 후 신자들과 사진을 찍고 교육관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 당시 북조선 가톨릭교협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장재언 사무엘 회장님이 ‘이렇게 (보수적인) 대구교구에서까지 북조선을 지원하고 방문까지 하였다.’고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평양에서 7박8일을 보내면서 매일 아침 호텔 방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개신교 장로였던 김순권 박사님이 미사에 참례하여 신자들의 기도를 도맡아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2년 반 전에 방문했을 때는 평양 모습이 상당히 좋아진 것을 보았습니다. 평양 순안공항부터 달라져 있었고 시내에는 많은 빌딩들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지난번 방문 때 나누었던 주된 이야기는 장충성당 재건축 문제와 남한 신부 평양 상주 문제였습니다. 평양에는 두 개의 개신교 교회가 있고 목사님도 계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18년 전에 갔을 때 묘향산의 보현사에 들린 적이 있는데 두 분의 스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최근의 분위기가 지속되고 발전된다면 장차 남북교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고 장충성당 재건축 문제나 남한 신부 평양 상주 문제들도 풀리리라 생각됩니다. 
철도 경의선 연결은 물론이고, 동해선도 포항에서 삼척까지 곧 연결될 것이며, 강릉에서 원산, 덕원, 청진, 나진, 두만강, 블라디보스톡, 모스크바, 베를린, 파리까지 연결 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되면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고 백두산까지 쉽게 갈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이미 그렇게 철도를 이용해서 유럽에 갔었습니다. 춘원 이광수의 ‘유정’이라는 소설을 보면 그 당시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리고 있는데, 그 사랑을 찾아 열차로 시베리아의 바이칼호수까지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그 끊어졌던 철길과 도로를 다시 복원하는 것입니다. 

 

국제관계가 다 그렇지만 특히 남북관계는 무엇보다 신뢰문제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그러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와서 남북관계가 이렇게 급진전할 수 있었던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 서로 간에 먼저 신뢰심을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의 회칙 ‘지상의 평화’에 나오는 다음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한 번 새겨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쟁 무기의 균형으로 평화가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신뢰로 참된 평화가 확립된다는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이는 객관적으로 가능할 뿐 아니라 사실 올바른 이성의 외침이며 대단히 바람직한 것이고 더욱 높은 유익을 인간에게 가져올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