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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중심은 누구입니까? (사제피정 파견미사 강론)
   2018/07/05  11:30

사제피정 파견미사

 

2018. 06. 29.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한티피정의 집

 

그동안 피정하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피정이 자신의 진면목을 성찰해야 하는 부담이 있긴 하지만 복잡한 일상을 잠시 떠나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을 쉴 수 있고 또 하느님으로 채울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에 저 개인적으로는 매번 기쁘게 참여합니다. 여러 신부님들도 저와 같으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이번 피정은 특별히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달에 세 차례에 걸쳐서 피정지도를 해주신 김영수 헨리코 신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김신부님은 그저께 강의에서 ‘우리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자신의 내면을 대면하는 일이며, 우리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야 할 신앙의 여정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 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두 좋은 피정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피정 중에 많은 은혜를 내려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1독서(사도 12,1-11)를 보면 야고보 사도가 헤로데 왕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베드로 사도마저 감옥에 갇히게 되자 온 교회가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기도를 바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자들의 기도 덕분인지 천사의 도움으로 석방된 베드로 사도가 신자들이 모여 기도하고 있는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립니다. 그래서 로데라는 하녀가 나와서 문밖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베드로라는 것을 알고는 너무나 놀라서 문을 열어주지도 않고 집안으로 들어가 밖에 베드로 사도가 왔다고 말하자 사람들이 “너, 정신 나갔구나.”하면서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기도를 하면서도 하느님의 은혜를 잘 믿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하여튼 우리를 알든 모르든 수많은 신자들이 우리 신부님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오늘 본명축일을 맞이하신 신부님들과 서품축일을 맞이하신 신부님들에게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는 초대교회를 떠받치고 있는 두 기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의 굳건한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셨고, 바오로 사도는 엄청난 열정으로 복음을 선포하며 교회를 발전시켰습니다.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앞에 이 두 사도의 거대한 석상이 지키고 있듯이, 초대교회뿐만 아니라 2000년의 교회 역사에 있어서 이 두 사도의 존재와 역할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4복음서를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께 질문하는 것보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질문하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무엇을 찾느냐?’, ‘누구를 찾느냐?’, ‘왜 겁내느냐?’ 등등 많은 질문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질문들은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마태 16,13-19)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하고 물으시고, 제자들이 대답하자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하고 생각하느냐?”하고 물으십니다. 여론조사나 사람들의 평가보다는 내 자신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가 우리 믿음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너에게 무엇이냐?’ 
김영수 신부님은 강의에서 ‘영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나냐? 하느님이냐? 나의 존재, 그리고 내가 하는 일들이 나의 성취를 통한 나의 만족이냐, 아니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냐?’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사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있는 것이고 예수님 때문에 내가 사제가 된 것입니다. 어제 저녁 미사 강론에서 정인용 신부님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뽑으신 사제라는 자의식을 가져야 한다.’ 고 강하게 말씀하셨는데 이는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하여튼 예수님의 질문에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대답을 잘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라는 그 믿음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이어서 2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첫 번째 수난예고를 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고 만류합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24절)
이렇게 성공과 실패를 거듭한 베드로의 믿음 위에 주님을 당신 교회를 세우셨고 베드로의 믿음과 영성은 그렇게 해서 성장해 갔던 것입니다.
한편 뒤늦게 주님을 알게 된 바오로 사도도 우리 교회에 끼친 영향이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열정을 다 하여 선교를 하였으며 수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오늘 제2독서로 읽은 티모테오 2서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우리도 생의 마지막에 바오로 사도처럼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인간적으로 볼 때 베드로 사도나 바오로 사도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분들도 우리들처럼 실수도 하고 잘못 생각하고 잘못 판단하여 우를 범하기도 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부르시고 품어주시고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하시고 당신의 큰일을 맡기셨던 것입니다. 
최근 거의 한 달 사이에 우리 교구의 두 분의 신부님(박병기 신부님과 이정우 신부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두 분 다 교회를 위해서 나름으로 열심히, 그리고 각자 특색 있게 사제의 삶을 사시다가 하느님께 가셨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두 분 다 인간적인 결함이나 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두 분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당신의 품 안에 품어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약함을 통하여 당신의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2000년 가톨릭교회 역사도 성령께서 이끌어 주신 역사이지만, 한편으로 적지 않은 잘못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며, 그래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스캔들을 안겨주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교구도 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서 교구 시노드를 개최하여 ‘새 시대 새 복음화’를 이루며 ‘다시 새롭게’ 살고자 하였지만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실망하고 고통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저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사제로서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로 방향전환하면서 다시 봉헌하여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어제 전야미사 복음인 요한복음 마지막 장(21장)은 우리들에게 큰 위로를 줌과 동시에 우리의 소명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것 같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왜 나를 배반하였느냐?”하고 한 마디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고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들도 말없이 서로 용서하고 사랑함으로써 하나가 되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와 성 이윤일 요한과 한티의 순교자들이여,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