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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나라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삶 (관덕정 순교자 현양후원회원의 날 미사 강론)
   2018/09/04  11:6

관덕정 순교자 현양후원회원의 날 미사


2018. 09. 01. 관덕정 순교 기념관

 

오늘 우리는 9월 순교자 성월 첫 토요일을 맞이하여 관덕정 순교자 현양후원날 날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순교자 현양사업을 위해서 아낌없는 도움을 주시는 여러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우리 선조 순교자들을 본받아 순교자의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느님의 은총을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대만 대중 교구로 선교를 떠나는 강우중 베르나르도 신부님의 파견식을 미사 중에 갖게 되었습니다. 신부님께서 그곳에 가서 사목을 잘 하시고 건강히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8월 25일(토)에 교구 평신도 임원들과 함께 전주 치명자산 성지와 전동성당으로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대구의 순교자보다는 치명자산과 동정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먼저 전주교구 교구청에 들렸는데 김선태 주교님께서 나오셔서 저희들을 환영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치명자산으로 갔는데 산으로 올라가기 전에 광장에는 토기굴로 만든 경당이 있었고 장막으로 만든 성당이 있었습니다. 전주교구 주교님이 마련해 주신 점심을 먹고 장막 성당에서 ‘님이시여 사랑이시여’라는 뮤지컬 연극을 보았습니다. 
그 연극은 ‘호남의 사도’라고 불리는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아들 부부 복자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를 중심으로 한 순교극이었습니다. 전주에 사는 신자들로 예술단을 꾸려서 올린 연극이었는데 감동적이었습니다. 노래와 연극을 같이 해야 되기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우리 교구도 하나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연극을 보고난 뒤에 치명자산을 올랐습니다. 입구에 ‘한국의 몽마르뜨(Montmartre)’라는 표지석이 눈에 띄었습니다. 원래 몽마르뜨는 프랑스 파리의 한 지명이름입니다만, 번역을 하면 ‘순교자 언덕’, 혹은 ‘순교자 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파리의 몽마르트는 생드니 등 여러 순교자가 순교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옛날에 순교자를 치명자라고 불렀으니까 치명자산을 몽마르뜨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하여튼 그 치명자산을 한 30분가량 오르는데 힘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몇 번 갔었을 때는 그렇게 힘들지 않게 올랐던 기억이 나는데 그동안 산 높이가 몇 미터 높아졌는가 싶었습니다. 어쨌든 산 정상 가까이에 기념성당이 있고 유항검 순교복자 가족묘지가 있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올라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몸이 흠뻑 젖은 채로 산상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성당 뒤에 있는 묘지에 가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무덤은 하나인데 그곳에는 유항검을 비롯하여 일곱 분의 순교자가 묻혀 계셨습니다. 그 중에 다섯 분이 지난 2014년 8월에 복자가 되셨던 것입니다.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큰 아들 유중철 요한과 며느리 이순이 루갈다, 그리고 둘째 아들 유문석 요한과 조카 유중성 마태오가 그분들입니다.
이 분들의 유해를 치명자산 위에 모신 분이 신나무골의 2대 주임을 하셨던 분인데 전주에 가셔서 전동성당을 지으신 보두네(Francois Xavier Baudounet) 신부님입니다. 1914년 4월 19일에 보두네 신부님과 신자들이 일곱 분의 순교자들을 그 산 위에 모셨다고 합니다. 산 정상에 순교자들을 모신 뜻은 동정부부를 비롯한 순교자들의 순결한 신심과 고매한 덕행을 높이 기리고 그분들에게 한국 교회를 수호해 주시기를 기원함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정부부’란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부부이면서 동정을 지킨다는 것인데 그것이 가능할까요? 서로 굳게 언약을 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요즘은 결혼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시대입니다만, 옛날엔, 특히 양반사회에서는 결혼하지 않는 일이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요한과 이루갈다가 동정의 뜻을 품은 것을 주문모 신부님이 알고 중매를 하여 그 당시 풍습대로 결혼을 시켰습니다. 그렇게 결혼한 부부로 4년 동안 한 집에 살았지만 남매처럼 살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유혹과 어려움이 있었겠습니까!
치명자산 성지의 김영수 헨리코 신부님이 지난 6월에 한티성지 피정의 집에서 있었던 교구 사제 피정을 지도해주셨는데 김 신부님이 ‘복자 이순이 루갈다 옥중편지’라는 책자를 우리 신부님들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중에 친정 어머니께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이 딸자식이 여기에 온 후, 저희가 평소에 근심하던 일이 생길 뻔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맹세하여 사 년을 친남매 같이 지내는 도중에 구월에서 시월 사이에 십여 차례의 유혹에 빠질 뻔하다가 주님의 성혈공로를 일컬으면서 능히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저의 일을 답답히 여기실 것 같아 이렇게 말씀드리니 이 편지를 저를 본 듯 여기시어 반기시기 바랍니다. 치명의 결실을 맺기 전에 이처럼 붓을 들어 글을 쓰는 일이 참으로 경솔한 짓이지만, 어머님의 근심을 풀어드리고 반기시게 하려는 일이니 이것으로써 위로를 삼으시기 바랍니다.”
효성도 참으로 대단한 것 같습니다.
유중철 요한이 몇 달 먼저 순교하게 되는데 요한의 옷 안에서 아내 루갈다에게 보내는 쪽지가 발견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습니다. “나는 누이를 격려하고 권고하며 위로하오.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참으로 숭고한 사랑이고 거룩한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이셨던 성 다블뤼 주교님께서는 이 동정부부를 ‘한국 순교사에서 가장 빛나는 진주’라고 일컬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랑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동정부부처럼 살지는 못해도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사는 그런 믿음을 가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 삶이 어렵고 고달파도 그분들처럼 하느님께 대한 깊은 열망을 가지고 산다면 세상의 부귀영화가 하나도 부럽지 않고 세상의 어려움들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성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8-39)
그렇습니다.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