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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산골짜기에서 자란 복음의 씨앗 (구룡 신앙 유적지 축복미사 강론)
   2018/11/20  10:52

구룡 신앙 유적지 축복미사

 

2018. 11. 17.

 

용성본당에서 지난 2015년 7월 31일 ‘구룡 성역화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추진해 왔던 구룡공소 복원 사업이 완료되어 오늘 축복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어려운 여건 중에서도 구룡 신앙 유적지 복원 사업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용성본당 주임신부님과 사목회 여러분, 그리고 문화재 복원 전문회사 건양문화와 설계회사 서홍 등에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지난 11월 13일부터 15일까지 의정부교구 한마음수련원에서 ‘한일주교교류모임’이 있었습니다. 14일 오후에는 마재성지를 방문하고 양국의 주교님들이 미사를 함께 봉헌하였습니다. 마재성지는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가족 다섯 분을 모신 성지입니다. 그리고 마재는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의 고향입니다. 
1801년에 신유박해가 일어나 정약종은 순교를 하였고 정약전과 정약용은 유배를 갔습니다. 이 신유박해는 당시 한양과 경기도와 충청도 일원에서 천주교를 믿던 교우들을 온 사방으로 퍼지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천주교회사를 쓴 달레 신부가 “박해의 폭풍이 복음의 씨를 멀리 날렸다.”고 한 말처럼 말입니다. 구룡교우촌도 그렇게 해서 형성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815년 을해년에 경상도 북부지방, 즉 상주, 안동, 문경, 봉화, 영양, 청송 등지의 교우촌에 살던 사람들이 포졸들에게 붙잡혀 당시 경상감영이 있던 대구에 끌려와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충청도 솔뫼가 고향인 복자 김종한 안드레아의 편지를 보면 ‘처음에 100여명이 붙잡혔는데 지금은 30여명이 남았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중에 11분이 4년 전 방한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서 시복이 되었습니다. 이윤일 요한 성인뿐만 아니라 대구에서 돌아가시고 지난번 시복되신 17분의 복자들 거의가 충청도 사람들입니다. 박해를 피해 소백산맥을 넘어 경상도 북부지방 산골짜기에 교우촌을 이루고 살았던 것입니다. 
한티성지와 신나무골성지는 1815년 을해박해와 1827년 정해박해 때 경상감영에 끌려와서 옥에 갇혀있는 동안 그 가족들이 대구 근교에 남아서 교우촌을 이루었던 곳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해를 피해 더 남쪽으로 와서 살았던 곳이 언양 살티, 간월산 죽림굴, 청도 구룡산, 경주 산내 진목정 등입니다.  
1836년 입국하여 경상도 지방을 담당하였던 성 샤스땅 신부님께서 이곳을 방문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1849년 중국 상해에서 서품을 받고 귀국하여 12년간 사목을 하였던 최양업 신부님도 이 구룡 교우촌을 방문하였을 것입니다. 이 구룡에서 시작하여 영천, 신광, 하양, 경산, 진량. 경주 등지로 전교가 되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구룡 교우촌 출신 성직자는 고 이임춘 펠릭스 신부님을 비롯하여 여덟 분이 된다고 합니다. 
 
구룡공소를 개축하기 전 건물은 드망즈 주교님께서 1921년에 방문하여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수리를 하였는데 이번에 건물을 완전히 해체하여 쓸 수 있는 목재는 재사용 하면서 새로 복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있었다가 없어진 사제관도 기와집으로 새로 지었습니다. 
우리가 구룡공소를 신앙 유적지로 새로 복원하는 이유는 앞서 가신 신앙선조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신앙을 자자손손 이어가야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많은 교우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순례하여 자신의 신앙을 더욱 깊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신앙을 널리 전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이윤일 요한과 한국의 모든 성인 성녀와 복자들이여,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