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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낮은 모습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 (주님 성탄 대축일 밤미사 강론)
   2018/12/27  2:2

주님 성탄 대축일 밤미사

 

2018 12 24 21:00 주교좌범어대성당

 

주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춥고 어두운 세상에 따스하고 밝은 빛으로 오신 구세주를 영접하며 이 기쁨을 교구민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우리 구세주로 오신 아기 예수님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그리고 이 나라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우리가 부모님이나 가족의 생일을 해마다 기념하고 축하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2천 년 전에 탄생하셨지만, 교회는 매년 주님의 성탄을 기념하며 대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되돌아보면, 2018년은 국가적으로는 큰 변화가 있었던 한 해였습니다.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으로 시작된 남북화해 분위기가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고 북미정상회담도 이루어졌습니다. 지금은 약간의 답보상태에 있습니다만 우리가 바라는 비핵화와 함께 이 땅에 참된 평화가 하루 빨리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8년은 또한 우리 교구로서는 ‘성모당 봉헌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한 해였습니다. 많은 행사와 감사미사가 있었던 은총의 해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외부로부터 오는 공격으로 인해 힘든 한 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교우 여러분 중에도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분들이 많이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임중도원任重道遠’이란 말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짐(책임)은 무거운데 갈 길은 멀다’는 뜻입니다. 공감이 갑니다. 얼마 전 어느 취업 포털 사이트에서도 올 한 해를 마감하는 사자성어 조사를 하였는데, ‘다사다망(多事多忙·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이 1위로 꼽혔고, 그다음으로는 ‘고목사회(枯木死灰·형상은 고목과 같고 마음은 재와 같아 무기력함)’, ‘노이무공(勞而無功·온갖 애를 썼지만 얻어지는 게 없다)’이 선정됐다고 합니다. 자영업자들이 가장 많이 고른 것이 ‘노이무공’이라고 합니다. 갖은 애를 썼지만 보람을 찾기 어려운 자영업자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우리의 구제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우리는 다시 맞이하였습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 9,1) 이사야 예언자의 이 말씀처럼 빛으로 오신 구세주께서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 주셨고, 그분을 믿는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도록 초대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구세주의 성탄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현실로 눈을 돌려 보면, 세상은 아직도 춥고 어둡습니다. 전쟁과 기아를 피해 자유세계를 찾아오는 난민들은 지금도 생사의 선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정세도 평화를 향해 나아가려 노력하지만 앞에 놓인 문제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정치는 어지럽고 경제 상황도 어렵습니다. 비정규직 젊은 청년은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죽음의 위험에 내몰리고, 빈곤층의 노인들은 이 겨울을 나기가 참으로 힘겹습니다. 가게 매상은 자꾸 떨어지는데 밀린 집세 독촉은 매일 받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난 21일(금) 낮에는 교구청 신부님 몇 사람과 함께 대구역 근처에 있는 무료급식소 ‘요셉의 집’에 가서 두 시간 동안 밥 퍼주는 봉사를 하였습니다. 오전 10시 반에 도착하였는데 그 때 벌써 노숙인들로 보이는 남자 분들 10여 분이 줄을 서고 계셨습니다. 대부분 드시는 음식의 양이 대단했습니다.

세상의 상황은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여전히 춥고 어둡습니다. 하지만 구세주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구세주께서 세상에 오신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나약한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구세주 탄생의 의미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분은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셔서, 자신을 낮추는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반면에 세상 사람들은 높은 것을 추구하며 자꾸만 높아지려고 합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만 높아지는 것이 우리 마음을 채워 주지는 못합니다. 세상은 과거보다 더 높아졌지만, 우리의 마음은 오히려 더 공허해졌습니다. 세상은 더 부유해졌지만, 우리의 마음은 더 헐벗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더 화려하고 밝아졌지만, 우리 마음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스크루지처럼 말입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4)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신을 낮춤으로써 높아지는 하늘나라의 가치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성탄은 2천 년 전 하느님께서 보잘것없는 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시어 우리 곁에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우리 교구는 지난 2011년 교구 설정 백주년을 보내고, 올해는 성모당 봉헌 백주년을 지냈습니다. 초대 교구장이신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께서 성모님께 드렸던 원의와 정신이 성모당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성모당 봉헌 백주년을 맞아 저는 “새로운 서약, 새로운 희망”이라는 사목 교서에서, 3년 동안 성모님께 대한 원의와 희망으로 특별히 기도하고 노력하자고 밝혔습니다. ‘회개의 해’를 보낸 우리는 내년을 ‘용서와 화해의 해’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회개를 통해 하느님께 죄를 용서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도 용서하고 화해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더 낮아져야 하고 나의 마음을 더 비워 내야 합니다. 나도 죄를 지은 죄인이고 하느님께 더 큰 용서를 받은 사람이라는 자각이 있을 때,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할 수 있는 용기와 아량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더 낮아지고 겸손해져야 할 것입니다. 낮은 모습으로 오신 구세주를 처음으로 맞이하고 경배할 수 있었던 이들은 낮은 이들이었습니다.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루카 2,8) 어두운 밤에 양 떼를 지키느라 들판에서 먹고 자며 생활하는 가난한 목자들이 가장 먼저 구세주 탄생을 맞이하고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임금이나 율법학자, 종교 지도자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이들은 구세주의 탄생을 볼 수 없었습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루카 10,21)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루카 2,10)이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졌습니다. 그러니 기뻐합시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어, 낮은 모습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고,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며 이웃과 화해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갑시다. 다시 한 번 주님의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