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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새로운 삶으로! (파스카 성야 미사 강론)
   2019/04/23  11:9

주님 부활 대축일(파스카 성야)


2019. 04. 20. 주교좌 범어대성당

 

부활 축하합니다. 알렐루야!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이 나라에 충만하기를 빕니다. 특별히 몸과 마음이 부서진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위로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일 주일 후면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 꼭 1년이 됩니다만, 그 성과가 아직 잘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여와 야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고 국민들의 마음도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에게 화해와 평화의 은총을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오늘 밤은 일 년 중 가장 ‘거룩한 밤’입니다. 그래서 오늘 밤을 ‘부활 성야’라 했습니다. 이번에 개정된 전례 경본에는 ‘파스카 성야’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전례는 4부로 진행되는데, 제1부 ‘성야의 장엄한 시작, 빛의 예식’, 제2부 ‘말씀의 전례’, 제3부 ‘세례 전례’, 제4부 ‘성찬 전례’가 그것입니다. 
말씀의 전례에서 읽어야 하는 성경말씀이 구약의 창세기부터 신약의 복음서까지 총 9개입니다.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하여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오늘 밤 몇 개의 독서와 기도로써 간략하게나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이는 누구나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1,25-26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이요,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이 부활신앙이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부활을 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때 악당들에게 붙잡혀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몇 번이나 예고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사흘째가 되었지만 무덤에 찾아간 사람은 몇몇 여자들뿐이었습니다. 여자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서 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과연 부활하셨는지를 확인하거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러 갔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발라드리기 위해서 무덤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 입구의 돌이 굴려져 있었고, 안에는 시신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래서 두렵고 당황하고 있는데 눈부시게 차려입은 어떤 남자 둘이 나타나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루카 24,5-6)
이 말을 듣고 여자들은 사도들에게 달려가서 이야기하였지만 사도들은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다만 베드로 사도가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가서 확인해 보고 놀라워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부활사건은 분명 그들의 생각이나 기대 밖의 일이었습니다.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부활 신앙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인간의 생각과 이성을 훨씬 뛰어넘는 완전히 새로운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나는 죽어서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손들어 보십시오. 손 안 드는 사람 많네요. 자신이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지도 않는 사람이 성당에는 왜 나옵니까?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가면 세 번 놀란다고 합니다. 첫째, 자신이 천국에 왔다는 사실에 놀라고, 둘째는 그 사람은 천국에 왔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안 보이니 놀라고, 셋째는 또 다른 그 사람은 천국에 오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천국에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속이나 진면목을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판단하고 심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부활의 삶은 어떤 삶입니까?  
지난 달 어느 주말에 고등학생 대상의 TV방송 퀴즈 프로 ‘골든 벨’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마침 대구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하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마지막 50번째 문제를 풀었고 골든 벨을 울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마지막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로마제국시대에 전장에 나가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하는데 그 장군의 뒤에서 한 노예가 외치는 소리가 있다고 합니다.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가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답은 라틴어로 “Memento Mori” 이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지금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겸손해져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또 ‘너의 승리는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죽음으로 얻어진 것임을 잊지 마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부활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려면 먼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죽어야 합니다. 죽어야 부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죽지 않으려고 합니다. 너무 강합니다.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하고 고집이 강하고 자존심이 너무 강합니다. 그래서 타협할 줄 모르고 양보할 줄도 모르고 물러설 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사회에는 갈등과 시비와 혐오와 싸움이 점점 더 심해져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정치 사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심지어 성직자들도 그렇습니다. 모두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심지어 주님의 일을 하면서도 자기 욕심과 탐욕과 시기와 질투와 미움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기 자신이 죽어야 부활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지난 사순 시기 담화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이기심과 자아도취를 뒤로하고 예수님의 파스카를 향해 돌아섭시다. 파스카를 향한 여정에서 우리는 참회와 회개와 용서를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얼굴과 마음을 새롭게 하여야 합니다.”
이 강론이 끝나면 세례예식이 있습니다. 이미 세례를 받은 사람은 세례서약갱신을 할 것입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먼저 죽어야 주님과 함께 부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파스카라는 말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십자가에서 부활로 건너가는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로마6,3-4. 8)
이처럼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죄에 대해서는 주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이제 주님과 함께 사는 새로운 삶,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가르침대로 사랑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주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