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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의 반석위에 세워진 신나무골 성지 (신나무골 성지 성당 봉헌미사 강론)
   2019/05/06  15:38

신나무골 성지 성당 봉헌미사

 

2019. 05. 02.

 

‘신나무골’이라는 이름은 이 동네에 신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저는 한 번도 신나무를 본 적이 없습니다. 하여튼 이곳은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일찍부터 교우촌이 형성되었던 마을이었습니다. 
신나무골은 경상도 교우촌 중에서 가장 교통이 편리한 곳이 아니었던가 생각됩니다. 대구 근교에서 외진 곳이면서도 교통이 편리하여 대구 읍내에서 하루거리로 다닐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서울에 살다가 한티에 가서 살게 된 김현상 요아킴 가정이 1837년 신나무골을 거쳐 갔다는 증언이 있고,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하신 성 야고보 샤스땅 신부님이 경상도 전교를 맡았으니까 신나무골을 방문하여 미사와 성사를 베풀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기 때문에 신나무골 교우촌은 그 이전에 형성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1849년부터 1861년까지 12년 가까이 최양업 신부님께서 주로 경상도와 충청도 지방을 순회 전교하셨으니까 신부님께서 이곳 신나무골도 들렸을 것입니다. 그 후에도 다블뤼 신부님, 뤼텔 신부님 등이 들렸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보록 로베르 아킬레오 신부님께서 1882년부터 경상도 지방뿐만 아니라 충청도, 강원도 일부 지방을 순회 전교를 하시다가 드디어 1885년에 이곳 신나무골에 터전을 잡게 됩니다. 그 당시 이이전 안드레아의 집을 매입하여 사제관으로 만들고 상주함으로써 신나무골이 경상도의 첫 본당이 되었던 것입니다. 
로베르 신부님께서 신나무골에 터전을 잡은 것은 이곳이 예전부터 교우촌이고 대구에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대구에 입성하여 본당을 세우기 위한 교두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구에 입성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1887년에 새방골로 가셨다가 1891년에 대구로 입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김보록 신부님은 이곳 신나무골에 계시면서 ‘연화학당’을 세워서 천자문과 한글을 가르치게 하여 외인들 전교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김보록 신부님에 이어서 보두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이 오셔서 18개월 동안 사목하시다가 전주로 가서 지금의 전동성당을 세우셨고 치명자산 성지를 조성하셨습니다. 전주의 숲정이 본당의 박인호 신부님께서 오늘 참석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 숲정이 성지를 새로 개발하기 위한 구상을 하시고 계시다는데, 신나무골 성지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보두네 신부님 후임으로 죠조 모세 신부님이 이곳에서 1년 정도 머물다가 1890년에 부산본당 초대주임으로 가셨습니다. 그 후 당분간 신나무골에는 사제가 없다가 1894년에 하경조 파이야스 가밀로 신부님이 입국하여 이곳에 오셨다가 다음 해에 가실로 가서 본당을 설립하셨습니다. 
그 후 신나무골은 사제가 없는 공소가 되었고 나중에는 공소조차도 유지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경상도 지방의 ‘신앙의 요람지’로서 개발을 하게 되었는데 1970년대에 왜관수도원 신부님들이 주축이 되어 성지 개발을 하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에 와서는 한국천주교회 200주년을 기해서 교구와 신동본당 차원에서 2차 성지개발을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칠곡본당 지역에 있던 순교자 이선이 엘리사벳의 유해를 이곳으로 이장하여 성역화하였던 것입니다.
이번이 제3차 성지개발이라 할 수 있는데 4년 전 서준홍 마티아 신부님이 신동본당 주임 겸 신나무골성지 담당으로 부임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년 2월 28일에 비바람이 치는 가운데서 기공식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작년 8월 9일에는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서 상량식을 가졌습니다.  

 

오늘 봉헌하는 이 성당은 김보록 로베르 신부님께서 대구 계산동에 1898년 9월에 완공하여 사용하다가 1901년 2월에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던 십자가형 한옥기와성당을 재현한 것입니다. 그 한옥성당이 소실되어 참으로 아쉽고 또 그 성당이 대구의 최초의 성당이었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서준홍 신부님이 제안을 했고 제가 승인을 하여 이곳에 다시 십자형 한옥성당을 재현한 것입니다. 
이번에 성당뿐만 아니라 한옥 기와로 된 사제관도 지었고, 로베르 신부님이 살았던 초가 사제관과 초가 휴게실까지 지었습니다. 
이번 3차 성지개발을 위해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신나무골성지개발위원회와 운영위원회, 그리고 설계와 건축을 담당했던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큰 재정적인 후원을 해주신 대구관덕정순교기념관후원회와 여러 은인 분들, 그리고 최근까지 성지를 잘 보존해주신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원, 그리고 여러 가지 편의를 봐주신 칠곡군 백선기 미카엘 군수님과 관계자 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복음(마태오 16, 13-19)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하는 질문과, 뒤이어서 “그러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며 축복하십니다.
“시몬 바르요나, 너는 참 복이 있다.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한 사람의 올바른 신앙 고백이 이렇게 엄청난 하느님의 축복을 낳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하느님께 올바른 신앙고백을 하시고 베드로 사도처럼 축복받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 사도께서 교회를 받치고 있는 반석이 되었듯이 우리들도 이 세상에 믿음의 반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올바른 믿음과 사랑의 삶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느님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천주교회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치면서 지켰던 신앙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순교자 이선이 엘리사벳은 갑자기 들이닥친 포졸들 앞에서 “나는 죽어도 성교를 믿겠소!”라고 대답하여 순교를 하였습니다. 
새로 단장한 신나무골성지에 많은 사람들이 순례를 오고 이곳에서 순교자들과 로베르 신부님을 비롯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신앙과 열성을 본받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우리 신앙의 선조들과 함께 장차 천국에서 하느님을 영원토록 찬양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으소서. 성 이윤일 요한과 한국의 모든 순교 성인들과 복자들이여,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