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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상처받은 치유자 (선교수녀연합회 연수 파견미사 강론)
   2019/09/18  9:28

선교수녀연합회 연수 파견미사

 

2019. 09. 17. 한티피정의 집

 

찬미예수님.

우리 교구 내 각 지역에서 선교수녀로서 소임을 맡아 일하시는 여러 수녀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즐겁고 보람된 일들도 있지만 반면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들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교구의 주교로서 미안한 마음과 또 고마운 마음을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이번 연수 강의 주제가 ‘트라우마의 치유와 활기찬 수도생활’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늘날 참으로 필요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통상 성직자나 수도자들은 신자들의 상처를 치유해줘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상처를 받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수도자들이 수도원 안에서도 그럴 수 있지만 특히 세상 속에 있는 본당에서 소임을 살아가시는 수도자들이 더 그러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우리도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어야 하고 활기차고 행복한 수도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직자나 수도자나 다 같이 우리들은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그리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봉사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티모테오 1서 3,1-13은 교회의 감독이나 봉사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사도 바오로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절제할 줄 알고 신중하고 단정하며 손님을 잘 대접하고 또 가르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관대하고 온순하고 돈 욕심이 없으며 모든 일에 성실하고 남을 험담하지 않으며 깨끗한 양심으로 믿음의 신비를 간직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모델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이십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마음,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루카 7,11-17)은 외아들을 잃은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시고는 ‘젊은이여, 일어나라.’하시며 그 외아들을 다시 살리시는 기적을 베푸시는 장면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 우리는 경험하지 못했지만 얼마나 그 고통이 처절할까 생각해봅니다. 지난 15일이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이었고 그 전날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이었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던 성모님의 고통을 생각합니다. 생각할 수 있지만 감히 그 고통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잘 가지 않습니다.

그러한 고통을 하느님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당신의 자비를 청하는 이들의 청을 거절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래, 내가 고쳐주마.’하고 다가가십니다.

 

지난 8월에 강원도 양양의 예수 고난회 피정의 집에서 2박3일간 휴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피정의 집 근방에 ‘38선 티모테오길’이 있었습니다. 그 길은 6.25 때 돌아가신 양양본당 주임신부 이광재 티모테오 신부님이 신자들을 찾아다니시던 길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도보순례길이었습니다.

신부님은 1939년 양양본당 제3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였습니다. 그런데 1945년 광복을 맞자마자 38선이 그어지고 본당에는 소련군이 주둔하게 되었습니다. 소련군은 당시 강원도 사목을 맡고 있던 골롬반 선교회 신부님들을 추방함으로써 북쪽의 많은 본당들이 목자 잃은 양떼가 되었고 그에 따라 이 신부님의 사목활동 범위가 평강과 원산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양양성당은 비록 이북에 위치해 있지만 38선과 가장 가까운 성당이자 38선을 넘는 가장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따라서 이광재 신부님은 원산과 함흥과 연길에 있던 신부님, 수녀님, 신자들이 38선을 넘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것입니다. 신자들이 신부님도 피신하라고 말씀드렸지만 신부님은 ‘내가 돌보아야 할 신자가 38선 이북에 하나도 없을 때 가겠다.’하고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1950년 5월 평강본당 백응만 신부님이 피랍되자 그 곳 신자 돌보기 위해 성모승천대축일 전에 돌아오겠다며 북으로 떠났으나 평강에서 공산군에 체포되어 원산 형무소에 수감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유엔군의 진격으로 후퇴하던 공산군은 1950년 10월 8일 밤에 형무소에 있던 성직자들과 신자들을 산중턱 방공호로 끌고 들어가서 그곳에서 총을 난사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저기에서 ‘살려 달라’, ‘물 달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제가 가겠습니다. 기다리세요. 제가 물을 드리러 가겠습니다.’ 하고 신부님이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 날 다행히 총을 맞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 신부님은 자신도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매면서도 신자들을 끝까지 위로하고 돌보시다가 그 다음날 숨을 거두셨다고 합니다.

이광재 티모테오 신부님의 모습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분들은 끝까지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들도 이 산에서 내려가야 합니다. 타볼산 같은 이 한티성지를 떠나 우리는 다시 풍진세상(風塵世上)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우리들이 돌보아야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 마지막에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고 하면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