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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사람, 교회의 사람 (부제 사제 서품미사 강론)
   2019/12/30  15:15

부제 사제 서품미사

 

2019. 12. 27. 주교좌범어대성당

 

오늘 이 미사 중에 일곱 명의 신학생들이 부제품을 받고, 열 분의 부제님들이 사제품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사람들에게 크신 은총을 내리시어 참으로 당신 마음에 드는 성직자로 태어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

작년까지 부제서품식과 사제서품식을 다른 날짜에 따로 하였는데 이번에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이 사람들이 부제품을 받고 사제품을 받기까지 도와주신 부모님들과 은인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양성해주신 대신학교 교수 신부님들과 본당신부님, 그리고 많은 기도를 드려주신 교우 여러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일본 후쿠오카 교구에 파견된 정원철 마르첼로 아까메아 신학생과 나가사키 대교구에 파견된 남시진 스테파노 신학생이 잠시 귀국하여 오늘 함께 부제품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가사키 대교구의 타카미 마츠아키 대주교님과 나카무라 미치아키 보좌주교님과 여러 신부님들이 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후쿠오카 교구의 스기하라 히로노부 신부님을 비롯한 여러 신부님들과 신자 분들이 오셔서 이 미사에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박수로 환영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부제품과 사제품을 받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신학교와 본당에서 학업과 함께 장차 성직자로서 갖추어야 할 성덕을 쌓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부제가 어떤 사람이고 사제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는 지난 긴 양성기간 동안에 수없이 들었을 것이고 수많은 묵상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부제가 되고 더 나아가 사제가 되고 싶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품을 받기에 합당한지 교회가 인정해야 하고 결정적으로는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쓰시겠다고 불러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24일에는 한티피정의 집에서 8일간의 피정을 마치면서 선발예식을 하였습니다. 그 선발예식에서 이 사람들은 하느님께는 신앙고백을 새롭게 하였고 교회에 대해서는 충성서약을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예레미야서 1장 5절을 보면,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느님께서는 나를 아시고 나를 선택하시어 성별하셨다고 하십니다. 참으로 엄청난 일이고 오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먼저 점찍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뿐인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갈 무렵에 책 한권을 읽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은 ‘태시기가’라는 책입니다. 김정훈 부제님의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라는 책과 비슷한 책입니다. 제가 성소를 받는 데 있어서 가장 영향을 주신 분은 저의 부모님이십니다. 그런데 ‘테시기가’라는 책도 제가 사제의 길을 가는 데 영향을 끼쳤던 것입니다.

‘태시기가’라는 책은 마산교구의 이태식 사베리오 부제님의 유고집인데, 올해가 그 분이 하느님께 가신 지 50년이 되어서 지난 5월에 마산교구의 성직자 묘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묘지에 갔더니 이태식 부제님이 마산교구 묘원이 조성되고 최초로 묻힌 분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이태식 부제님은 1968년 12월 19일에 부제품을 받았는데, 부제품을 받기 이틀 전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당신이 저를 선택하셨습니다. 주여, 저는 이제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당신 이외는 누구도 저의 영혼과 육신을 빼앗지 말게 하소서.”(‘제대 앞에 엎드려’ 중에서)

요한복음 15장 16절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이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특히 오늘 품을 받게 될 이 사람들을 뽑아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사람들은 하느님의 종이요 하느님의 일꾼이며 하느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종, 하느님의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 수는 없습니다.

오늘 제1독서를 보면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부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 준다.”(예레 1,9)

그래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자기 생각, 자기 지식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선포해야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요한 1서 1,1-4)에서도 사도 요한은, 자신이 그동안 보고 듣고 만졌던 생명의 말씀에 대하여 말하고 영원한 생명을 선포할 따름이라고 말합니다.

 

오늘이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이라서 복음도 요한복음을 선택하였습니다. 그것도 요한복음 마지막 장(21,15-17)입니다. 이 마지막 장은 요한 사도께서 쓴 것이 아니라 요한 사도의 제자들이 나중에 추가한 것이라고 성서학자들이 이야기합니다만, 이 마지막 장도 아주 감동적입니다.

결론적으로 요한 사도께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의 사랑받던 제자의 기록이고 요한 사도는 ‘사랑의 증거자’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요한 사도처럼 사랑의 증거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복음서에서 당신 자신을 이야기할 때 늘 ‘주님의 사랑받는 제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베드로를 먼저 내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야기를 듣고 무덤으로 달려갔을 때에도 사도 요한이 젊었으니까 먼저 도착하였지만 무덤에 들어가지 않고 베드로 사도께서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베드로로 하여금 먼저 무덤에 들어가도록 배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요한복음 마지막 장도 주인공은 예수님과 베드로입니다. 저는 예수님과 베드로 사도가 나누는 이 마지막 대화 장면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베드로 사도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꼭 지금 저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이 질문을 세 번이나 하십니다.

그럴 때마다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왜 똑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하셨는지 분명히 알지는 못합니다만, 여러분은 십자가의 길에서 세 번이나 주님을 배반했던 베드로를 기억할 것입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주님에 대한 사랑을 세 번 고백함으로써 그 배반을 되갚아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베드로와 요한과 같은 사도들 위에 세워진 것이 오늘의 교회인 것입니다.

 

오늘 부제품과 사제품을 받을 이 사람들이 곧 품을 받게 되면 이제 한 개인이라기보다는 하느님의 사람이요 교회의 사람이 되는 것이며, 목자요 교사요 봉사자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일생일대에 중요한 순간을 맞이한 이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큰 은총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구 주보이신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성 이윤일 요한과 한국의 모든 성인 성녀와 복자들의 전구를 청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