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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화의 여정을 위한 증인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 강론)
   2020/01/02  14:33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2020. 01. 01. 주교좌범어대성당

 

성탄 축하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은 ‘성탄 팔일 축제’ 마지막이며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고 ‘새해’ 첫날입니다. ‘주님 세례 축일’까지가 ‘성탄시기’입니다만, 성탄이 워낙 큰 축일이기 때문에 팔일 동안 축제를 지냅니다. 오늘이 그 마지막 날로 새해를 시작하며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성자 예수님을 낳으셨기 때문에 431년에 있었던 ‘에페소 공의회’에서 교회는 성모님께 ‘천주의 성모’라는 칭호를 부여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모님은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묵묵히 구원의 협력자로서 그 역할을 다하셨던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루카 2,16-21)을 보면, 밤새 들판에서 양을 지키던 목동들이 천사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에 찾아와서 새로 태어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경배 드린 다음 자기들이 들은 것을 아기의 부모에게 전해줍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마리아는 그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고 합니다.

오늘 제2독서인 갈라티아서 4,4-7에서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시듯이,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우리들 안에 오셨고 우리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고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의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은혜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새해 첫날에 성모님을 ‘천주의 성모’라고 부르며 주님의 성탄을 기뻐하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새해 첫날을 ‘세계 평화의 날’로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 가장 절실한 것이 평화가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번 제53차 ‘세계 평화의 날’에 ‘희망의 여정인 평화: 대화와 화해와 생태적 회심’이란 제목의 담화를 발표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핵의 구렁텅이로 이어지는 벼랑 끝에 매달려 있고 무관심의 장벽에 갇혀있는 지극히 불안정한 평형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고 교황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이 전쟁과 테러와 폭력과 갈등과 분열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 중에 하나일 뿐 아니라 상황이 아주 심각합니다. 한반도의 정세가 ‘시계제로’라고 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017년 5월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2018년에는 남북정상회담이 세 차례(2018년 4월 27일, 5월 26일, 9월 18-20일)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감격했고 들떠있었습니다.

북미정상회담도 2018년 6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세 차례(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2019년 2월 27-28일 하노이, 2019년 6월 판문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별 성과가 없이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는 듯 하는 느낌이 들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특히 2020년 올해는 남북분단 75년이 되는 해이고 6.25한국전쟁 발발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추계정기총회에서 결정하기를, 올 2020년에는 매일 저녁 9시에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주모경을 바치기로 하였고, 올 6월 25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온 교회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를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대구주보 지난 성탄특집호에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란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1950년 12월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있었던 흥남철수작전 중의 한 이야기입니다. 메러디스 빅토리아호라는 미국 화물선이 함경도 흥남부두에서 군수물자를 다 버리고 대신 14000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2박 3일의 긴 항해 끝에 12월 25일 아침에 거제도에 도착하여 사람들을 무사히 다 구출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메러디스 빅토리아호는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기적의 배로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던 것입니다.

흥남철수 장면은 몇 년 전 영화 ‘국제시장’에도 나옵니다만, 옛 가요 ‘굳세어라 금순아’ 라는 노래의 가사가 당시 상황을 잘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를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아마도 이 노래의 주인공은 배를 타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동생 금순이를 잃어버리고 혼자서 남하한 것 같습니다. 1.4후퇴 때 엄청난 피난민과 이산가족이 발생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1.4후퇴’라고 하는지 아시지요? 1951년 1월 4일에 있었던 일인데, 대한민국 정부가 수도 서울을 포기하고 후퇴한 날을 말합니다. 달리 말하면 북한군이 서울을 다시 점령한 날이지요.

1950년 10월말에 한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는데 갑자기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밀려오니까 후퇴를 하고 있었고 그 중의 하나가 흥남철수작전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6.25 때 두 번이나 수도 서울을 포기하고 후퇴하였던 것입니다.

하여튼 14000명을 구한 메러디스 빅토리아호 이야기를 하다가 1.4후퇴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습니다만, 그 배의 선장이 ‘레너드 라루’ 라는 사람입니다. 그 분은 그 후 4년 뒤인 1954년에 성 베네딕도 수도회에 입회하여 마리너스 수사라는 이름으로 수도생활에 전념하시다가 2001년 10월 14일 87세의 일기로 선종하셨습니다.

2015년 제가 당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정위원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그해 9월 미국 필리델피아에서 있었던 ‘세계가정대회’에 참석하였는데 대회가 끝난 후 뉴욕으로 가는 길에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뉴톤 수도원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마리너스 수사님이 그 수도원에서 일생을 지내시다가 돌아가시고 묻혀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 분의 무덤을 방문하였던 것입니다.

땅이 백만 평 가까이 되는 그 수도원에서 수사님들이 주로 하는 일은 어린 전나무를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전나무를 모종하여 10-15년을 키워서 크리스마스 추리로 파는 것입니다. 미국의 웬만한 가정은 거의가 생나무로 크리스마스 추리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마리너스 수사님도 ‘기도하고 일하라’는 성 베네딕도의 말씀에 따라 평생을 그렇게 살았던 것입니다.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원의 박현동 아빠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마리너스 수사님을 시복청원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14000명의 인명을 구한 그 엄청난 일을 한 레너드 라루 선장이 전쟁이 끝난 후 왜 갑자기 수도원에 입회하여 한 평생을 이름 없이 그렇게 살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분은 전쟁 중에 그 많은 피난민을 자신의 배에 싣고 검은 동해바다를 운행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느님의 섭리를 체험했던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오늘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 공동 기원을 두고 있는 우리는, 이 공동의 기원에 기초하고 대화와 상호 신뢰로 이루어지는 참 형제애를 추구해야 합니다. 세상은 공허한 말이 아니라 확신에 찬 증인들이 필요합니다. 곧 배척이나 조작 없이 대화에 열려있는 평화의 일꾼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세상의 지도자들이, 특히 정치인들이 교황님의 이 말씀을 새겨들으면 좋겠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화의 여정은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고,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복수심보다 훨씬 강한 공동의 희망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길을 여는 인고의 노력입니다.”

오늘 복음(루카 2,16-21)에 나오는 마리아와 요셉 성인이 그러했듯이 우리들도 평화의 여정을 위해 인내와 신뢰와 인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해에는 남북한이, 그리고 북미간이 다시 만나서 대화와 양보와 화해로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한반도가 같은 민족으로서 평화롭게 살 새로운 방도가 찾아지기를 바라며 열심히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구는 2020년 새해를 ‘치유의 해’로 살고자 합니다. 우리 교구민들이 대내외적으로 입은 상처에 대해 예수님께서 치유의 은혜를 내려주시고 성모님께서 우리를 잘 이끌어 주시기를 빕니다. 그 치유를 위해 아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치유의 해’를 사는 우리 모두가 다른 사람에게 치유가 되고 선물이 되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저희와 저희 교구와 우리나라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